아나니아와삽비라사건과두려움 / 김의걸 집사


Unknown

나는 가드너로 몇년동안 어느 미국교회의 가든을 관리한 적이 있다.
그 교회는 당시 가장 큰 손님이었다. 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서비스를 그만 두라는 편지를 받았다. 그런데, 행정을 보는 사람의 실수인지 서비스를 그만 두었는데에도 돈을 보내왔다. ‘돌려주어야지’ 하면서 입금을 시키지 않고 집에 몇달을 두었는데, 언젠가 돈이 급하여 입금을 하여 써 버렸다.

나는 역사를 굉장히 좋아한다.
TV드라마도 역사드라마만 본다.
요즘은 ‘정도전’을 열심히 보고 있다.
성서 중에도 역사적인 사실들과 관련된 것은 더욱더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목장모임에서도 새벽기도회에서도 초기 기독교 역사인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새벽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 정신없이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였는데, 목사님이 말씀 제목이 ‘사람을 의식하는 삶’으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였다.

다른 분들은 이런 성경구절을 접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들까?
나는 ‘참 억울하다.’는 생각이 먼저든다.

베드로의 책망을 보면 더 가관이다.
“아나니아, 왜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겨 성령을 속이고 땅 판 돈의 일부를 빼돌렸소? 팔기 전에도 그 땅은 당신 것이었고 판 뒤에도 그 돈은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요? 그런데 어쩌자고 그런 생각을 품었소? 당신은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속인 것이오!”(3,4절)

몇개월전에 예수님이 체포당해 심문당하는 그 현장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던 베드로가 아나니아를 이렇게 몰아붙이고 있다.
크게 다르지 않는 아나니아와 베드로, ’불공평하다’는 생각 또한 든다.
아주 일반적인 사건 중의 하나로 대충 넘어갈 수도 있었을 이 이야기가 베드로로 인하여 황당한 결말로 흘러가게 된다.

다른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전혀 아나니아에게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베드로의 꾸중을 듣자 즉시 아나니아는 그자리에서 꺼꾸러져 죽고 말았다.
그후 가족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최소한의 장례절차도 밟지 않고 시신을 간단히 처리했다.

“젊은이들이 들어와 그 시체를 싸 가지고 내어다 묻었다.”(6절)는 구절을 보면 흡사 조폭들이 배반한 조직원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는 모습과 쏙 빼 닮았다.
공동체의 구성원의 사망을 이렇게 처리하는 것은 한 인간의 생명을 온 천하보다 귀중하게 여기는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인가?
‘설사 무슨 사정이 있더라도 이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또한 든다.

산상수훈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를 행하지 말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한다.’라는 말씀을 목사님이 인용하신다.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치고, 과연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행동이 이런 정도로 무거운 죄였을까? 이런 기준에 의한다면 우리들 모두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당장 죽어야할 사람들이 아닌가? 그래서 ‘무섭다’라는 생각이 마지막으로 든다.

이 이야기의 키워드는 ‘두려움’인 것 같다.
아나니아가 죽었다는 말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하였으며’(5),
삽비라 사건을 전해들은 사람들도 역시 “몹시 두려워하였다.”(11).
아나니아나 삽비라와 전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던 교회 공동체 사람들과 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누가는 이 “두려움”을 말하고 싶어 이 불합리한 것처럼 느껴지는 애피소드를 기록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떤 거짓말도 통할 수 없는 투명한 새로운 세계, 즉각적으로 발생하는 하나님의 심판!

어린아이들이 엄한 아버지에게서 느끼는 느낌?
조직을 이탈하고 싶지만 사이비 교주앞에서 공포에 휩싸는 여신도?

과거의 어떤 경험이 떠오른다.
3년정도 전에 절벽에서 떨어져 사경을 해맨 적이 있고, 우여곡절끝에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퇴원하게 되었다.

이 엄청난 사건 의 경험속에서‘감사’ ‘은혜’ 이런 것도 있지만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느낌은 ‘두려움?’이다.

어떻게 표현하기가 힘들다.

나는 한국에서 사망사건을 조사하는 일을 오래동안 했다.
그 습관때문인지 그 절벽에서 사건의 인과관계를 조사해보고 싶어 퇴원 후 얼마되지 않아 그 현장을 방문했다.

그 때 그 알수없는 ‘두려움’ ‘경외’ ‘아득함’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강열한 힘같은 느낌을 받았다.

수많은 사망현장을 다녀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이런 지형지물에서 내가 살았났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뭔가 꿈을 꾸고 있다는 느낌, 모든 사람이 나를 속인 것 같은 느낌,
같이 간 아내의 신경질적 반응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그 현장을 방문했지만, 도저히 내가 하려고 했던 조사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그 현장이 뭔가 신비로운 기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그 자리에서 느끼는 그 ‘두려움’의 실체는 뭐라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 두려움은 어떤 사람이 지옥의 고통을 상상하면서 느끼는 두려움같은 것과는 다르다.

뭔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큰 힘 앞에서 느끼는 놀라움같은 것이다.
이 두려움의 힘은 뭐라 하기가 힘들지만 보통의 두려움처럼 나를 파괴하는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신앙을 만드는 힘이 된 것 같다.
의도치 않게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나열하게 되었다.

어쨋든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에피소드는 ‘두려움’ ‘경외’’거룩함’ 이런 의미를다시한번 자꾸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하늘 새땅, 인간의 죄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그 세계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

성서는 ‘신비’의 하나님의 말씀이라 읽고 묵상을 할 수록 어렵고 아득하다.

김의걸 집사

소개 NHCC
New Heaven Community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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