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걸: 일상과 수행


일상 그리고 수행

처음으로 평일 날, 바깥에서 목장모임을 했다. Food court에서 말씀을 나누었는데, 꽤 분위기가 산만하기도 하였지만, 나누는 성경의 내용이 어렵기도 하였고, 목자모임에 내가 참석해야 했었는데 부득이 참석하지 못하여 서로가 답을 말할 수 없으니 이야기나 꽤 어수선하게 진행이 되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빌 2:12)”

처음 구절을 읽을 때부터 너무 어렵고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라 집중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최근 친하게 지내고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대화를 자주 나누는 불자가 있다.  종교인으로 공감되는 부분이 참 많았고, 신, 구원, 해탈, 수행, 윤회 등 우리가 집중하고 있는 주제들에 대하여 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현실에서 경험하는 인간관계나, 부조리들로 인한 번뇌들을 전 우주적인 질서, 윤회 등으로 잘 이해하고 정리해 내는 내공이 있었다.  그는 내가 경험한 불교인들 중, 가장 많이 가슴에 와 닿는 에피소드를 공유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영감을 주었다. 장미의 가지치기를 하며 가시가 자신에게 가하는 반항으로 가시에 찔림을 당연한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이고, 길을 가로막고 있는 감나무 가지를 자르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감나무가 서운해 할까 봐 나무 근처에서 하지 말라고 저어하기도 한다.  그는 내가 구원을 향한 노력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불에 집중하여 수행을 한다. 자기가 경험한 여러 가지 사건들을 민감하게 자기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매일 참회의 시간을 진지하게 갖는다. 그러나 그의 자신에 대한 너무 예민한 성찰이 나를 안타깝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에 향한 날카로운 채찍이 느껴졌다. 그는 심한 두통을 앓고 있는데, 구원 또는 해탈을 향한 그의 진지한 삶의 자세가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By grace, through faith에 의한 구원이라는 기독교의 원리를 설득하고 싶어지게 했다.

유대교를 극복하는 예수의 복음의 핵심은 인간을 삶을 구속하고 질곡에 빠뜨리는 율법주의, 뭔가를 해야 하고, 뭔가를 하지 않아야 구원에 이른다는 지배논리를 신의 사랑과 은혜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도바울 또한 거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그런데, “더욱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니, 신에 은혜 없이 나처럼 나약한 인간이 무슨 수로 구원을 이루란 말인가? 그 불자가 하는 수행, 나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생각해 본다. 장미꽃을 뒤덮은 잡초를 걷어내며 그 잡초의 ‘성불’을 염원하는 그의 모습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의 말씀이 오버랩이 된다.

먼저 성서연구나 예배, 기도 등에 불성실하고 산상집회나 깨장 등에 관심이 없는 나를 돌아다 보게 한다. 경건훈련이 필요한 것이고 그것에 소홀한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에서, 곧 구원, 해탈은 궁극적인 생명과 관련된, 그러므로 우리의 전 실존에 담긴, 삶의 떨리는 투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수행은, 신앙생활은 취미생활이나 마음의 평안을 위한 교양생활이 될 수 없고, 음악의 경지를 쌓아가듯이 종교교양을 쌓거나,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며 즐길 수 있는 삶의 여유와는 다른 그 무엇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먹고 마시는 것에 집중할 수 없는 실존이다. 그러나 영성가들은 이런 일상의 행위 속에서 전 우주적으로 태양과 물과 흑과 공기가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먹거리 속에서 궁극적인 생명의 세계와 교감하며 신의 은혜를 깨닫고, 우주의 섭리를 느낄 것이다. 성서의 저자들, 불교의 고승이나 가톨릭의 수도사들은 이런 사소한 삶에서 절대자와 교감을 하는데 익숙해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을 하면서 경험하는 뜨거운 햇살, 목이 말라 마시는 한 모금의 물,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어주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 사람들과의 대화, 이런 당연한 듯한 일상에서 태초부터 종말까지를 살짝살짝 드러내는 전 우주적인 사실들을 경험해 나가는 과정이 신앙생활이 아닐까?

잡초를 뜯으며 성불을 읊조리는 그 불자의 일상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는 한 단편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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