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빠졌던 수렁과 바울의 위로 (김의걸 집사)


내가 빠졌던 수렁과 바울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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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올 초에 많이 기운이 빠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꾸 나를 오해를 하는 것이 참 괴로웠습니다.

그 사람들이 미워지다가 이런 상황 속에 있는 내 스스로를 견딜 수 없었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자책하다 보니 좌절의 수렁에 빠진 것입니다.

 

작년 1년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인회에서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하였습니다.

장효수목사님은 저에게 “당신은 우리 교회에서 한인회에 파견한 선교사입니다.”라고 자주 말씀하셨지요.

목사님의 말씀이 없어도 제 스스로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거창하게는 지역선교를 한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강같이 흐르는 세상을 만드는 하나님 나라운동의 작은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나름 애를 썼습니다.

그동안 투명한 한인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그리고 의미 있는 사업을 해나가기 위해 모든 한인회 구성원들이 논쟁이 있었지만 힘을 모아, 작지만 의미 있는 사업들을 진행 해 왔습니다.

이전 한인회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된 측면을 개선하기 위해  항상 저는 비영리단체로서의 명확한 절차와 투명성을 요구하는 측이었습니다.

그런데 연말이 되어 한인회 재정의  공개를 위해 논의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부가 그 동안 불만이 쌓였는지내 의도를 자꾸 오해합니다. ‘회장단의 약점을 일부러 자꾸 뒤지려고 한다. 집행부를 무력화시켜 자기 마음대로한인회를 이끌어가려 한다.’는 식의 오해나 논쟁은 자주 있었던 일이고 그래도 견딜 만 했는데, ‘한인회 사용의 편의를 봐주고 경제적인 이득을 취한다’고 오해하고, 하물며 ‘한국에서 비영리단체활동을 하면서 돈 문제가 투명하지 않았다’는 식의 말도 되지 않고 근거도 알 수 없는 오해와 공격들이 좌절의 늪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또 다른 모임에서도 나의 활동에 대하여 내가 무슨 숨은 의도가 있어서 공작을 하듯이 오해를 받습니다. 미국에 여행을 온 내가 그냥 재미있고 보람찬 여행이 되고픈 욕심이 문제인 것인지……

 

그런데 오늘 예배시간에 고린도전서 9장을 읽으며 비슷한 상황에 있는 바울을 발견하였습니다.

물론 바울이 경험하고 고백하는 삶의 자리와 나의 자리를 비교하고 위로를 받는 것은 교만한 것이고 가당치도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바울은 예수님과 공생애를 같이 하지 못했고, 훗날 사도로 부름을 받은 것을 예루살렘의 기독교지도자들에게 잘 인정을 받지 못했는가 봅니다.

바울이 당신의 사도직에 대한 오해에 대하여 항변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불쌍하게 느껴져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치사하게 느껴질 정도로 극단적인 항변을 합니다.

“우리에게 먹고 마실 권리가 없습니까? 우리에게는 다른 사도들이나 주님의 동생들이나 게바처럼 믿는 자매인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습니까? 나와 바나나에게만은 노동하지 않을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고전9:4~6)

 

“내가 권리가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잘난 너희들처럼 결혼도 하지 않고 주님의 일을 하는지 아는가? 내가 권리가 없어서 교회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천막이나 만들고 사는지 아는가? 정말 더럽고 치사하다.”는 극단적인 항변이 어쩜 내가 처한 상황과 이리도 비슷한지.

 

이전에 바울의 이런 분노를 읽은 기억이 있어서 성경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불러주신 그분에게서, 여러분이 그렇게도 빨리 떠나 다른 복음으로 넘어가는 데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갈1:6)

몇몇 사람이 여러분을 교란시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나, 또는 하늘에서 온 천사일지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갈1:7~8)

 

당시 엄청난 권위와 도덕성을 인정받던 베드로와 예수님의 동생들 그리고 그들이 파견한 사람들에 대해 저주까지 하는 강한 항변,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에 넘어간 교인들에 대한 섭섭함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바울의 섭섭함, 울분 그리고 항변이 내 자신을 감정이입하는 그 자체로서도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천하의 바울도 이런 모함을 당하여 마음이 이토록 아프기도 하는데, 내가 좌절의 수렁에 빠지는 것은 어쩜 당연하지 않은가 하는 마음이 들어서 말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6절)

그러나 사도바울이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이런 수렁을 극복해 나가는 자세를 보는 것이 진정한 은혜와 위로였습니다.

‘유대사람들에게는, 내가 유대사람을 얻으려고, 유대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그리스도의 율법아래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이 없는 사는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구구절절 가슴을 찌릅니다.

자신의 사명에 대한 열정이 없이는 그들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는 사실,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정과 확신이 할 말이 있어도 꾹꾹 참아야 하는 것들 상대적인 것들을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넘어가게 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믿음의 선배인 사도바울이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정말 대단합니다. “경기에 나서는 사람들은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하지만 그 “목표가 분명하지 않는 달음질”은 “허공을 치는 권투”가 된다는 이어지는 말씀들은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떻게 이런 수렁을 극복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정만이 상대적인 것들이 나를 빠뜨리려는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참으로 직설적인 권면이 고린도전서 9장이라고 느껴집니다.

고린도전서 9장은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다른 사람들의 오해와 비방으로 상처를 받았을 때, 직효약인 것 같습니다.

김의걸 집사

소개 NHCC
New Heaven Community Church

One Response to 내가 빠졌던 수렁과 바울의 위로 (김의걸 집사)

  1. janghyosoo says:

    김집사님, 귀한 고백에 감사드립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새롭게 역사하시지요.
    우리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로서
    흔들림없이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어도 집사님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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