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6
2015/10/16 댓글 한 개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6
향과 초 아래의 썩는 냄새
로마서 2:1-16
Good morning!
- 영적갱신은 말씀과 회개기도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온전한 회개기도가 있기 위해서는 말씀의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없는 회개기도는 허공에 흩어지는 소리가 됩니다.
- 남의 아내를 빼앗았던 다윗은 하나님 앞에 큰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의 죄를 감추려고, 다른 죄를 짓고, 그 죄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죄를 짓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의 종인 선지자 나단이 다윗에게
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은 부자의 탐욕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죽어야 마땅합니다.’
라는 반응을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죄만을 지적하고 정죄를 합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그런 믿음이 아닌가 우리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윗처럼, 자신의 죄를 바라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잘못과 죄만을 바라보고 심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사도바울은 1장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의, 불신자의 죄들을 말합니다.
2장 1-16절은 이미 믿고 있는 사람들의 죄,
기존 신자들의 범죄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믿는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 범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기존신자들이 범할 수 있는 죄가 의인의식입니다.
자신은 의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는 죄입니다.
- 이 의인의식으로 인하여 자기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죄의 이야기에 놀라지 않습니다.
자기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해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의 진노는 자신과는 관계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인간의 죄를 탓하시고 심판으로 정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그러하기에 항상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신앙이며,
덤덤한 믿음이고, 사죄의 은총이 바닥난 사람들입니다.
- 이런 죄인들은 완고함(고집) 때문에
회개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2:5)
자신은 고집에 세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항상 옳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만든 기준으로 자신의 생각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기준이 하나님의 기준과
일치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자기 기준으로 가진 강한 생각은 고집입니다.
- 이런 의인의식 속에서 고집이 강하여 회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남을 판단합니다.
남을 잘못을 자신의 기준으로 정죄를 합니다.
자기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관대한데,
남의 허물에 대해서는 예민하고 크게 보는 보게 됩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을 자신도 행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행하는 죄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는 엄격하여 정죄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진정으로 관대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이고, 큰 그릇의 사람입니다.
-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돌아온 아들(탕자의 비유)의 이야기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 돌아온 동생을 위해
아버지는 잔치를 베풀어 줍니다.
그런 아버지의 관대함에 형은 분노를 하게 됩니다.
동생의 허물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형의 분노였습니다.
아버지는 용서하고 받아들였는데,
인간의 시기와 탐욕으로 인한 분노였습니다.
우리가 혹시 이 형의 마음으로 의로운 체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 하나님의 심판은 기준이 있습니다.
악한 일을 한 모든 사람은 환난과 고통이 주어질 것이고,
선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차별이 없으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심판의 기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듣고 알고 있는 것이 의로운 삶이 아닙니다.
율법을 듣고 알고 있는 것만으로
의로운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정 의로운 삶은 율법을 듣고
율법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 사람이 죽으면 향과 초 그리고 국화를 올려놓습니다.
지금 장례의 방식이 변화되었지만,
원래 죽은 시체의 냄새를 막기 위하여 관 위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향, 타는 초, 아름다운 국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향과 초 그리고 국화 아래에서의 시체는 썩어가는 것입니다.
잠시 덮는다고 해서 바꿀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향과 초와 국화 같은 것으로
우리의 죄를 덮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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