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예수님 수난 (박춘환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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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들 독생자 되시는
우리 구주 예수님

효성이 지극하신 아드님께서
아버님의 뜻 순종 하시려

아무 죄 없으신 주님께서
홍포 입으시고 가시 면류관 쓰셨네

가시밭길 골고다의 길 안으로 씹으시며
열고 싶으신 입 꼭 다무시고
그 길이 당신께서 가셔야 할 길임을 아셨기에

온 천하 만인의 죄 홀로 짊어지시고
로마 군병들의 멸시천대 희롱조롱 중상모략
침 뱉고 뺨 때리고 채찍에 맞으시며
그 무거운 십자가 형틀 어깨에 메시고
한걸음 두걸음 발자욱 옮기실 때
이리비틀 저리비틀 진흙더미에 주저앉으시고
돌무기에 엎어지시고 가시떨기에 채어 너머지시며
높고 낮은 비탈길에 쓰러지실 때

하늘이 울고 땅이 울고
공중나는 새들이 울고 산천초목이 울었다네

하늘 계신 아버지
차마 눈감으시고 고개 돌리셨네

속울음 울면서 뒤따라 오시던 어머니 마리아
그 무거운 십자가 지시고 악당들의 발끝에 채이고
채찍에 맞으시며 비틀거리시는 아드님의 뒷모습
피눈물에 담아 삼키시며
녹아내리는 애간장으로 사랑하는 아드님의 이름
불러보고 또 불러봐도 사라지고 마는 메아리

로마 군병들 우리 주님을
십자가 형틀에 올려놓고 양손 양발에 못질하여
미리 파두었던 구덩이에 짐짝처럼 던저 세울 때
손과 발의 못자국 처참하게 찢어져 축 처지셨네

천하에 악당 로마군병
주님의 옆구리 창으로 찔러 물과 피 모두 쏟으신 후
다 이루었다 하시며 운명하셨네

오 하나님 아버지시여
죄 많은 우리 인간이 무엇이기에
한분밖에 없으신 아드님
이 낮고 천한 인간 세상에 보내시어
지구상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슬픔대신 기쁨을 죽음대신 생명을
절망대신 희망을 이 땅에 심어주시려

그 험한 십자가 지고가신 주님 은혜 갚을 길 없어
이 몸이 아버지 품에 안기는 그 날까지
성령님의 불길로 남은 생명 불태워
주님께 올려드리고 싶은 마음 받아주소서 아멘

용서 / 곽춘환 사모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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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수 없는 원수를 용서하면
기도응답을 받는다오
내 마음 그늘진 곳에 쌓인 눈 녹아내리면
시냇물 졸졸졸 노래하며 흐르고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며
봄나비때 춤추는 내 영혼에 새봄이 온다오

사랑할 수 없는 원수를 용서하면
내 마음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온다오
햇살가득 내 가슴 방안에 들여놓으면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리듬을 타고
하늘나라 성가대 합창곡 들려온다오

사랑할 수 없는 원수를 용서하면
갈증난 내 영혼에 단비가 내린다오
오늘밤 이슬비가 땅을 적시면
내 마음 꽃밭에 깔깔대는
웃음꽃 담 넘어가
하늘 천사와 노래하며 춤을 춘다오

하나님 나라 / 곽춘환 사모

하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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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 뱃속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나 혼자만이 가지고 열달동안 살면서
이곳이 나의 안식처요
영원히 살아갈 내 집인줄 알았다오
어느날 갑자기
내 온실집이 진동하면서 무너지더니
세상이란 지구 한 구석방에
나 홀로 덩그러니 떨어져 나오게 되었을때
너무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응애 응애 목청을 높여 울어버렸지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때에는
그 집이 내 집이고 영원한 안식처로 착각했다오
그처럼 행복했던 어머니 뱃속집은
열달밖에 지켜주시기 못하셨고
나는 세상이란 지구상에 홀로 떨어져 나와
찬서리 모진바람 울고 웃으며 아옹다옹 살고 있다오
이 세상에서 백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다른 세상으로 떠나야만 하는 나의 운명

다음 세상은 어떤 곳이며
그곳에서는 누가 나를 반겨주며 기다려줄건가
다음 세상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의 안식처를 예비해 놓으시고 기다리신다오
세상의 지혜와 지식으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는 이 크고 엄청난 비밀
지혜롭고 슬기롭고
행복한 자들에게는 꼭꼭 숨기시고
어리석고 어눌해서
바보같은 자들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 나라
나는 보았네
그 호화 찬란한 황금 보석으로 꾸며진 내가 들어갈 궁전을

풍파많은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고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신부단장 새색시되어 신랑되신 주님만나
천군천사 웨딩마치 울리며 결혼예식 하는 날
주님 손잡고 요단강을 건널때 세상에서 못다이룬
멍든 가슴 쓸어주시며 눈물닦고 위로해 주신다오
나의 주님 손잡고 열두 진주문 들어갈 때
앞서가진 성도님들 앞에서
천군천사 날 옹위하고 들어간다오
황금보석 꾸민 궁전에서
신랑되신 우리 주님과 영원무궁하도록 함께 산다오

 

노인 / 박춘환 사모

박춘환 사모님의 “노인“이라는 시를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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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인

 박춘환

어릴적 듣던 그 이름 노인

허리는 구부러지고
다리는 절뚝 절뚝 오리 걸음
얼굴은 짜놓은 행주
머리에는 하얀 눈송이 향수에 담아 노래 부르네
눈서리 축 늘어진 백장미

남의 이름인줄 알았던
그 이름이 내 이름이라니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해야만되는 그 이름 노인

내가 두고 온 청춘
이 모습 이대로 영원할 줄 알았네
여보게 젊은이들이여
늙었다고 괄시마소

세월이란 앞에 놓고보면 멀리 보여도
지나고보면
공책 한 장 넘긴 공간이라네

그러나 우리는 여기가 끝이 아니라오
부활사신 예수님과 함께 다시 태어나
공중에서 신부 단장 흰옷입고
우리 주님과 결혼 예식하며
꽃구름 타고 셋째 하늘에 올라가
신랑되신 주님과 우리 아버지 집에서
영원 무궁토록 같이 산다오

십자가

이상승 집사님께서 좋은 시를 소개해주셨습니다.
신익섭 집사님께서 찍으신 사진과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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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윤동주-

약속의 무지개 (박진규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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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들의 정성의 예배가

하늘 하나님을 감동케하여서,

 

교회 지붕위로

꿈의 무지개를

펼쳐 주셨어요.

 

희망의 무지개를

약속의 무재개를

 

(2015. 2. 8. 박진규 장로)

내가 빠졌던 수렁과 바울의 위로 (김의걸 집사)

내가 빠졌던 수렁과 바울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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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올 초에 많이 기운이 빠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꾸 나를 오해를 하는 것이 참 괴로웠습니다.

그 사람들이 미워지다가 이런 상황 속에 있는 내 스스로를 견딜 수 없었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자책하다 보니 좌절의 수렁에 빠진 것입니다.

 

작년 1년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인회에서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하였습니다.

장효수목사님은 저에게 “당신은 우리 교회에서 한인회에 파견한 선교사입니다.”라고 자주 말씀하셨지요.

목사님의 말씀이 없어도 제 스스로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거창하게는 지역선교를 한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강같이 흐르는 세상을 만드는 하나님 나라운동의 작은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나름 애를 썼습니다.

그동안 투명한 한인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그리고 의미 있는 사업을 해나가기 위해 모든 한인회 구성원들이 논쟁이 있었지만 힘을 모아, 작지만 의미 있는 사업들을 진행 해 왔습니다.

이전 한인회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된 측면을 개선하기 위해  항상 저는 비영리단체로서의 명확한 절차와 투명성을 요구하는 측이었습니다.

그런데 연말이 되어 한인회 재정의  공개를 위해 논의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부가 그 동안 불만이 쌓였는지내 의도를 자꾸 오해합니다. ‘회장단의 약점을 일부러 자꾸 뒤지려고 한다. 집행부를 무력화시켜 자기 마음대로한인회를 이끌어가려 한다.’는 식의 오해나 논쟁은 자주 있었던 일이고 그래도 견딜 만 했는데, ‘한인회 사용의 편의를 봐주고 경제적인 이득을 취한다’고 오해하고, 하물며 ‘한국에서 비영리단체활동을 하면서 돈 문제가 투명하지 않았다’는 식의 말도 되지 않고 근거도 알 수 없는 오해와 공격들이 좌절의 늪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또 다른 모임에서도 나의 활동에 대하여 내가 무슨 숨은 의도가 있어서 공작을 하듯이 오해를 받습니다. 미국에 여행을 온 내가 그냥 재미있고 보람찬 여행이 되고픈 욕심이 문제인 것인지……

 

그런데 오늘 예배시간에 고린도전서 9장을 읽으며 비슷한 상황에 있는 바울을 발견하였습니다.

물론 바울이 경험하고 고백하는 삶의 자리와 나의 자리를 비교하고 위로를 받는 것은 교만한 것이고 가당치도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바울은 예수님과 공생애를 같이 하지 못했고, 훗날 사도로 부름을 받은 것을 예루살렘의 기독교지도자들에게 잘 인정을 받지 못했는가 봅니다.

바울이 당신의 사도직에 대한 오해에 대하여 항변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불쌍하게 느껴져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치사하게 느껴질 정도로 극단적인 항변을 합니다.

“우리에게 먹고 마실 권리가 없습니까? 우리에게는 다른 사도들이나 주님의 동생들이나 게바처럼 믿는 자매인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습니까? 나와 바나나에게만은 노동하지 않을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고전9:4~6)

 

“내가 권리가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잘난 너희들처럼 결혼도 하지 않고 주님의 일을 하는지 아는가? 내가 권리가 없어서 교회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천막이나 만들고 사는지 아는가? 정말 더럽고 치사하다.”는 극단적인 항변이 어쩜 내가 처한 상황과 이리도 비슷한지.

 

이전에 바울의 이런 분노를 읽은 기억이 있어서 성경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불러주신 그분에게서, 여러분이 그렇게도 빨리 떠나 다른 복음으로 넘어가는 데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갈1:6)

몇몇 사람이 여러분을 교란시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나, 또는 하늘에서 온 천사일지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갈1:7~8)

 

당시 엄청난 권위와 도덕성을 인정받던 베드로와 예수님의 동생들 그리고 그들이 파견한 사람들에 대해 저주까지 하는 강한 항변,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에 넘어간 교인들에 대한 섭섭함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바울의 섭섭함, 울분 그리고 항변이 내 자신을 감정이입하는 그 자체로서도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천하의 바울도 이런 모함을 당하여 마음이 이토록 아프기도 하는데, 내가 좌절의 수렁에 빠지는 것은 어쩜 당연하지 않은가 하는 마음이 들어서 말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6절)

그러나 사도바울이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이런 수렁을 극복해 나가는 자세를 보는 것이 진정한 은혜와 위로였습니다.

‘유대사람들에게는, 내가 유대사람을 얻으려고, 유대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그리스도의 율법아래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이 없는 사는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구구절절 가슴을 찌릅니다.

자신의 사명에 대한 열정이 없이는 그들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는 사실,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정과 확신이 할 말이 있어도 꾹꾹 참아야 하는 것들 상대적인 것들을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넘어가게 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믿음의 선배인 사도바울이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정말 대단합니다. “경기에 나서는 사람들은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하지만 그 “목표가 분명하지 않는 달음질”은 “허공을 치는 권투”가 된다는 이어지는 말씀들은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떻게 이런 수렁을 극복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정만이 상대적인 것들이 나를 빠뜨리려는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참으로 직설적인 권면이 고린도전서 9장이라고 느껴집니다.

고린도전서 9장은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다른 사람들의 오해와 비방으로 상처를 받았을 때, 직효약인 것 같습니다.

김의걸 집사

거리선교회 방문 안내문 (1/18 주일 오전 7시)

6.25사변을 겪은 세대는 많은 분들이 한번쯤 노숙자생활을 겪어본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 기억속에는 종이상자와 나무판자 등…비,바람을 가리울 수 있는 모든것들을 엮어서 길거리 이곳 저곳에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과  제가 자란 서울만 하여도  가마니 깔고 헌담요 한장 덮고 노숙하는 사람들이 즐비했던 기억이 떠 오릅니다.
물론 지금의 상황과는 많이 다른점이 있지만 노숙은 노숙입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거리,공원 등으로 배회하며 많은 고독과 상처,분노와 좌절,혹은 그리움을 안고 사는 노숙자를 생각하면서 내 자신을 돌아 보니 감사를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예수님도 노숙자 아니였던가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이번주일 7시에 머리 둘 곳이 없는 분들을 찾아 갑니다. 어쩌면 그곳에서 머리 둘 곳이 없으셨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다음과 같이 안내합니다.
직접 오셔도 되고  교회에서 늦어도 정각6시에는 출발하오니 교회로 오셔서 합승을 하셔도 됩니다. 준비물은 없습니다. 따끈한 마음만 갖고 오시면 됩니다.
101하이웨이 S.F방향으로 오시다 Caesar Chavez Exit 지나고 Vermont Exit들어 오셔서 왼쪽으로 들어와.. 언덕을 타고 내려 오셔서 15가에서 왼쪽으로 들어 오시면 붉은 벽돌건물(showplace Square West)이 오른쪽으로 보이는 장소입니다.
주소:550 15th  St. showplace Square West,  San Francisco  CA94103 (예배장소)

-선교사역팀 드림-

주수일: 사과를 깍으며

사과를 깍으며

톡,톡
머리를 두 번 두드리고 사과를 깍는다
사과는 금새 홀랑 옷을 벗기우곤
어쩔 줄 몰라
무릅에 얼굴을 파묻는다
우박도 이껴내고 목마른 가뭄도 견디며
햇빛으로 살찌운
달콤한 너의육체
어쩌랴
내 잎은 벌써 군침이 가득하다
다음엔 네가 사람으로 태어나
내 머리를 두드리고
나를 벗기려무나,사과여 (황상순.시인)

사과밭에 들어서니 상큼한 사과향이 코를 자극한다     잎은 많이 떨어지고 열매 또한 대부분 수확하고
달려 있는것은 얼마 안되는 것 같다   사과 한알이면 의사가 필요없다는 서양속담이 있듯이 건강에 좋고
맛도 일품이니……….사과 1개에 85Kcal의 저칼로리로 각종 성인병 예방뿐만 아니라 변비,피부미용,감기
예방에도 좋다니 올 겨울은 감기쯤은 걱정 안해도 될것같다
특히 이곳 왓슨빌지역은 대표 작물인 딸기뿐만 아니라 사과도 맛 좋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쯤에서  사과홍보대사 역활은 접어두고…….감사하다는 말씀 올려 드림니다

지난주(11월23일)까지 수익금 $1425불을 교회에 입금시킨 후  내팔에서 선교사역을 하시는
김경수선교사님께 전액 후원키로 했음을 보고 드림니다
작은 액수이지만 그 어느 선교헌금보다 정성과 뜻이 서려있습니다
손.발로 뛰어 다녔기도 했고  그 과정을 보면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고 거듭 말씀드림니다
농장주에게 우리의 취지를 말씀드려 할인을 받아  전날 오더를 하면 싱싱한 올게닉사과를 따 놓으면
저의 부부가 픽업하여 여러분께 전달하면 또 거기서 배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단계 더
배달하므로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기금이 조성되었습니다
아마 내년 1월까지 계속 할 예정이오니 관심과 동참바람니다
전반기 기금은 장학기금에 적립되었고   앞으로 조성되는 기금은 선교 및 구제에 사용토록 하겠습니다
수시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과 이웃 (황태섭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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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목장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성경 공부를 하였다. 목장 모임 전에 목자께서 질문에 대한 묵상을 위해  본문과 질문을 미리 공지하여 주셨는데,  잘 알려진 내용과 익숙한 주제였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없이 성경 공부에 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자주 접했던 성경 본문이지만 늘 마음 한켠에 부담을 주는 주제라는 생각이 있었다.

목장 모임 중에 다양한 질의와 토론이 오고가며 예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깨달음이 있었다. 이번 성경 공부를 통해 새롭게 다가온 것은 ‘이웃’에 대한 새로운 의미였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경의 핵심을 압축하고 또 압축한다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을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주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이웃’을 ‘내 주위에 살거나 나와 가까운 관계 속에 있는 사람’으로 해석한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해주었으면 하듯이, 나도 주위 사람들에게 댓가를 바라지 않고 조건없이 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좋은 이웃이 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늘 주고 받는 관계 속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받기만 해도 부담스럽고, 주기만 해도 야속한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때로는 적당한 선을 긋고 그냥 안주고 안받는게 마음 편하다라는 핑계 속에서 살기도 한다. 물론 그래도 마음이 좀 넓은 분들은 사전적인 의미의 ‘이웃’들에게 조건없이 베풀고 도우면서 살아간다. 그 정도만 해도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참 좋은 사람들’이라고 우리는 이야기한다.

나 또한 이러한 생각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질문을 던졌던 율법교사도 그러한 사전적인 의미의 ‘이웃’을 기준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강도를 만난 불행한 그 사람은 이전에 사마리아인과 알고 지내던 사이가 아니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웃’이란 내 주위에 있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만이 아니라, ‘강도를 만나 본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이었다. 나와 일면식도 없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애타게 바라고 있는 절체절명에 놓여 있는 사람들.

그러고보니 예수님은 성경 속에서 늘 약한 자들과 버림받은 사람들 편에 서셨던 것 같다. 거지, 과부, 고아, 문둥병자, 사회적 천대의 대상이었던 사마리아인, 간음이라는 누명을 쓰고 돌로 사형 당할 위기에 놓였던 여자, 사회적 편견과 저주의 대상인 장애인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먼저 사랑하셨고, 우리에게도 이들이 바로 ‘이웃’이라는 가르침을 주신다. 귀찮아서 피하고, 두려워서 외면하고, 괜히 가까이 있다가 오해를 받을까봐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는 내 자신의 모습이 다시금 부끄러워진다. 예수님의 말씀을 과감히 확대 해석한다면, 제사와 성결 예식을 따라 행동했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율법은 잘 지켰지만  ‘영생’이 없는 삶이다. 남에게 피해 안주고, 주일이 되면 교회에 가서 봉사하며, 주위 사람과 적당히 잘 지내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웃’에 별다른 관심없이 살아가는 내 삶은 어떤 것이 자문해본다. 솔직히 두려운 마음이 든다.

또 한가지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던 것은..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늘 가까이 하는 사람들 중에 겉으로는 멀쩡해도 ‘속으로는 강도 만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적당한 가면을 쓰고 아프지 않은 척 해야 살아갈 수 있는 현실 속에서 ‘강도를 만나 마음이 무너진 가까운 사람들’부터 다시 살펴봐야겠구나 싶었다. 가족들 중에, 친구들 중에, 교회 식구들 중에, 회사 동료들 중에.. 아프지만 아프지않은 척하면서 살아가는 이들도 소중한 이웃들이다. 이들에게 다가가 그저 묵묵히 상처를 싸매고 같이 아파하고 위로할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소망하고 기도해본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예전에 ‘나쁜 사마리아인’이라는 책을 접한 적이 있었는데, 그 책 제목이 기억이 난다. 겉으로는 좋은 사람인 것 처럼 멋진 취지와 그럴 듯한 명분으로 다가가서 실제로는 아주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경우를 패러디한 제목이었다. 신자유주의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내세우면서 실질적으로 경제적 폭력을 휘두르는 선진국들을 상징한 ‘나쁜 사마리아인’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접할 수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과 21세기 현실을 대표하는 ‘나쁜 사마리아인’.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 조용히 자문의 시간을 가져본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