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

콩깍지

대체로 부부 사이가 좋은 사람들이 웃으면서 하는 말 가운데, 그때 콩깍지가 씌웠었지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호감이 가다가 사랑하는 감정이 생길 때 만들어지는 현상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무슨 행동을 해도, 무슨 옷을 입어도, 무슨 말을 해도 다 좋아 보이는 것을 콩깍지가 씌웠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해도 다른 사람들처럼 나쁘게 보이지 않고, 오히려 좋아 보이는 마음이 생기는 그런때 사용하는 말이 콩깍지입니다. 콩깍지라고 하는 것은 콩을 떨어낸 껍데기를 의미하지만, 여자와 남자 사이에서 콩깍지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눈을 가려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상징물로 쓰이고 있습니다. 사랑에 눈이 멀었다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장점만 보이고, 단점도 장점으로 보이고, 평범한 것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을 말합니다. 과학자들의 분석이지만, 호감이 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뇌에서 엔드르핀이 분비되고, 이러한 호르몬에 의해 행복한 감정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랑의 콩깍지는 아름다운 것이지만, 부정적인 콩깍지는 사람의 삶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세상을 바르게 보고, 올바르게 반응할 때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세상이 만들어낸 콩깍지를 쓰게 되면, 건강하지 못한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보고 평가를 하기 때문에 건강한 반응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콩깍지를 깨닫게 되면 치열한 노력으로 그 콩깍지를 벗겨내야 합니다.

유대교의 지도자요, 열정을 가지고 살았던 사울은 하나님의 세상을 온전히 못 보도록 하는 비늘이 그의 눈을 덥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을 가던 사울이 주님을 만나 눈의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세상을 온전하게 보는 시력이 회복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세상을 당황하게 합니다. 당신의 눈을 가린 비늘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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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제거

잡초제거

제가 어렸을 때 살았던 고향집에는 시골이었기 때문에 밭이 있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목회와 교육사역을 하셨기 때문에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집 옆에 넓은 밭이 있어 집에서 먹을 채소들을 심었고, 부지런하셨던 아버님께서 철따라 파, 고추, 마늘, 배추, 감자들을 심어 지금 생각하면 유기농 야채를 먹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가면 항상 아버님께서 밭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봄철이 되면 가을 때까지 틈나는 대로 땅을 일구고, 고랑을 만들어 씨를 뿌리셨고, 싹이 나면 물을 틈틈이 주셨으며, 밭에 있는 풀들을 뽑으셨습니다. 주로 아버님이 하셨지만, 우리들은 어머님의 강한 권고와 협박으로 밭으로 나가 풀을 뽑는 것은 우리의 몫이었습니다. 한국의 여름은 비도 많이 내리고 햇볕이 좋기 때문에 정말 풀이 많이 자랐습니다. 방학 때가 되면 시간을 정해놓고 풀을 뽑는 일이 방학생활 계획표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시골에서는 논둑이나 밭 고랑에 풀이 많으면 그 집은 게으른 집이라고 합니다. 뜨거운 햇볕아래 풀 뽑는 일이 그때는 싫었습니다. 지금생각하면 하나님의 큰 은총이었고, 자연과 인생을 배우도록 했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잡초는 농사를 짓든지 정원에서 때와 장소에 적합하지 않은 식물을 말합니다. 그 가치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식물들이라고 말하는 시인이 있지만, 그 잡초는 특히, 농사를 짓는데 있어 불필요한 풀입니다. 야채밭에 잡초가 많으면 야채가 영양분을 빼앗기고,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야채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풀들은 뽑아내야 합니다. 우리의 건강한 영성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삶을 가로막는 풀들이 무성해지지 않도록 잡초를 제거하는 것이 끊임없는 기도와 묵상과 섬김입니다. 영적 잡초제거를 하는데 게을리 하면 열매맺지 못하는 삶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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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마리 늑대

두 마리 늑대

서울에 있는 내 친구가 어떤 드라마에서 나왔다고 하면서 몇 컷의 만화를 보내주었습니다. 두 마리 늑대라는 짧은 만화였습니다. 오래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의미가 함축된 만화로 보니 새로웠습니다. 체로키 인디안들로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인디언 추장이 말합니다. 내 안에서는 싸움이 불어지고 있단다. 두 늑대 사이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한 마리는 악한 늑대인데, 욕심, 오만, 죄책감, 허세, 열등감, 화, 질투로 가득한 늑대이고, 다른 한 마리는 선한 늑대인데, 기쁨, 평화, 사랑, 희망, 자비, 너그러움 그리고 믿음으로 가득한 늑대라고 합니다. 이 싸움은 내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다른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인디언 꼬마가 질문합니다. 할아버지, 그런데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인디언 추장은 말합니다. 네가 먹이를 주는 쪽이 이기는 것이란다.(The one you feed)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만화였습니다. 내 안에만 그런 두 마리의 늑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안에서 두 마리의 늑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안에만 두 마리의 늑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두 마리의 늑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짧은 만화를 보며 한참 생각했습니다. 내 안에 있는 두 마리의 늑대 가운데 나는 어떤 늑대를 먹이고 있는가 생각할 때 부끄러운 마음이었습니다. 내 안에서 나만 그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런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듭니다.

사도 바울은 노년에 말합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도리어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이유는, 내 안에 다른 법이 있는데, 그것이 죄라고 말합니다. 내 마음의 법과 싸운다고 합니다. 두 마리의 늑대들입니다. 주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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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리더의 배려

좋은 리더의 배려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란 공자의 말이 있습니다. 세사람이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말입니다. 평범한 사람들 같지만, 서로 차이가 있어서 배울만한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 시대에서는 스승이라기보다는 리더(leader)라는 말이 더 적절합니다. 세 사람이 가면 그 중에 리더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리더들을 보면, 리더는 태어날 때부터 리더의 성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상황 가운데 끊임없는 리더의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본성적으로 리더의 성격이 있는 사람이 있지만, 진정한 리더는 삶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뛰어난 리더에 대한 여러 글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리더들은 바쁘다는 말을 하지 않고, 실수를 지적하기 보다는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구성원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또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며, 의견을 수렴하는데 많은 시간을 쓴다고 합니다. 또한 비판하기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라는 것입니다. 목회자도 교회의 한 리더인데, 이런 리더의 품성을 온전히 갖지 못하고 교회를 섬긴다는 것이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 리더 품성 중의 한가지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되돌아보니 때로는 상대방을 도와준다고 하면서도 내 입장에서, 내가 편한 대로, 내 방식대로 도움을 주려고 했던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자기의 갑옷과 칼과 창 그리고 군화를 주었습니다. 사울의 좋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다윗에게 적절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벗어놓고, 자기의 방식대로 나갑니다. 사자가 기린이 배고프다고 불쌍하다며 고기를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의 도움이 아니라, 상대방 중심의 도움이 될 때 참 도움이 됩니다.

모기소리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모기소리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영화평론을 쓰는 내 친구는 암살이라는 영화를 보고나서 조연이지만 속사포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랑스러운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지만, 생계형 독립군이었다는 것입니다. 암살단에 들어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도 배가 불러야 하는 거지, 돈 한 푼 없이 이러는 거는 좀..’ 애국 이전에 먹고 사는 일부터 먼저 챙기겠다는 생계형 독립군의 삶을 유쾌하게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수류탄을 던졌지만, 불발탄이 되면서 암살계획이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암시하지만, 실제 영화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일제 지도자 두 사람의 암살 실패가 아니라, 해방이 된 후 친일파와 반민족행위를 했던 사람들을 조사하고 처벌하려고 했던 반민특위가 실패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정말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은 깨진 안경을 쓴 안옥윤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두서너 명의 일본 앞잡이들을 죽인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고, 일본이 망하는가라고 하는 질문에, 안옥윤은 말합니다.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이 대사야 말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 마음에 남아있는 심장을 울리는 대사였습니다. 세상이 볼 때 작은 힘이고 외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위한 싸움을, 독립을 위한 싸움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줄 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여기에서(here and now) 우리에게 주는 목소리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면서 작은겨자씨의 삶을 말씀합니다. 작고 겨자씨이지만, 우리가 뿌리기만 하면 먼 훗날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악이 지배하고 선한 세력을 끊임없이 도전하는 세상에서 우리 믿는자들의 삶은 작은 겨자씨의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작은겨자씨와 같은 선한 싸움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주게 될 때, 이 세상은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생계형 크리스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비교문화

비교문화

인간 삶은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인간관계는 만남을 통해서, 혹은 글을 통해서 관계형성이 되어졌고, 그 관계형성을 통해서 자신을 보고 세상을 보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오랜 역사동안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과 만남은 최근에 이르러 새로운 변화를 하고 있습니다. 가장 커다란 변화는 방송이고, 가장 최근의 변화는 SNS (social network service)입니다. 카톡이나 facebook 과 같은 쌍방적인 SNS는 새로운 관계형성의 통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한된 관계형성에서 광범위한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SNS는 좋은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사랑이 독(毒)이 되듯이 SNS도 때로는 불균형적인 관계형성을 만들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시간과 관심을 보이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 가까이 있는 사람들,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의 관계형성이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함께 있지만,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요즘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것인데, 대체로 SNS에서는 행복한 모습만을 대체로 올리는데, 그로 인하여 이것을 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은 다 어려움을 겪지 않고, 행복한데, 왜 나는 그렇지 못한가라는 좌절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스탠포드대학에 오리 신드롬(Duck syndrome)이란 말이 있습니다. 성공을 향해 물 속에선 버둥거리면서도 SNS와 같은 공간에서는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실제 삶과 보여주려고 하는 삶의 차이에서 오는 삶의 불균형이 행복하지 못한 삶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십계명에 십일계명이 있는데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삶은 중요한 것입니다. 기쁜 일이 있지만, 내 삶에는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우며 좌절이 있습니다. 그런 모든 것이 합해서 내 존귀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내 삶을 사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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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성(Flexibility)

유연성(Flexibility)

몇 년 전 수련회에서 사진을 담당하던 집사님의 카메라를 들여다 보다가 뷰파이더(viewfinder)의 글씨가 선명하지 못한 것을 알았습니다. 선명하게 보려고 조정을 하려고 해도 쉽게 되지 않아 그 집사님에게 말씀드렸더니 노안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며칠동안 수련회 진행을 하면서 수면을 취하지 못한 피곤함도 있었지만, 노안이 시작된 것을 늦게 알았습니다. 먼 곳을 보다가 가까운 사물을 보려면 눈의 굴절력이 변해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눈의 수정체의 조절인데, 나이가 들면 수정체가 딱딱해지고 탄력이 떨어지게 되고 책을 읽는 것과 같은 근거리 작업이 어려워지는데, 이것을 노안이라고 합니다. 눈의 노안은 돋보기를 통하여 부분적으로 해결하게 됩니다. 눈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좋았던 내가 돋보기를 쓰는 것이 불편하지만 편해지니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눈의 노안은 돋보기로 해결이 되는데,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 사고의 굳어짐입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져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약해지는 것을 봅니다. 삶의 경륜이 쌓이고 다양한 세상을 보며 인생을 조금씩 깨닫게 되면 더욱 생각이 넓어지고 유연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의 생각만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강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즘은 그런 사고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굳어지는 것이라는 깨닫게 됩니다. 사고가 굳어지면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생각으로 정죄를 하게 되고, 일방통행의 대화가 되며, 가르치려고만 하기에 관계형성이 힘들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고가 유연한 어른들 그리고 자신을 낮추는 어른들을 만나면 오히려 존경심이 들고, 함께 삶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예수님 당시에 신앙의 노안으로 굳어진 사람들이 바리새파사람들,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해서 굳어진 사고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 사람들입니다. 영적으로 병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과 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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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깎기 부모(lawn mower parents)

잔디깎기 부모(lawn mower parents)

얼마전 하바드와 스탠퍼드에 동시합격한 천재소녀에 대한 기사가 한인사회와 한국에까지 알려졌지만, 사실 거짓인 것이 드러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학부모와 학생의 지나친 기대와 과욕이 만들어낸 비극적인 현상이었습니다. 며칠전 캐나다에서 한 베트남계 가족들안에서 일어난 비참한 사건이 우리를 충격하게 해 주었습니다. 첫째 딸이 이민을 온 베트남계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학력을 위조하고, 부모에게 학교에 대한 거짓말을 일삼었다가, 끝내는 버티지 못하고 결국 부모를 상대로 청부살인까지 저지른 사건이 더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민생활을 하며, 자녀들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간섭을 하고 있는 아시안 가족들에게 주는 경고의 소리로 들립니다. USC의 한 연구는 미국 명문대학들인 아이비리그(Ivy league)에 입학한 한국학생들 가운데 60% 정도가 중도 탈락한다고 보고했습니다. 컬럼비아대학의 한인명문대생 연구에서는 아이비리그에서 한국학생이 중도 탈락하는 비율이 44%로 가장 높다고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분석의 결과는 다양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을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간섭 그리고 자녀들의 독립심 부족이라고 했습니다.

헬리콥터맘(Helicopter mom)이란 말이 있습니다. 성인이 된 자식의 주위를 헬리콥터처럼 맴돌며 입시와 성적, 취업은 물론 결혼 후에도 일일이 간섭하는등 자식의 중요한 삶을 결정하려는 엄마를 일컫는 말입니다. 자식을 가슴에 품고 다니는 지극한 부모의 마음이지만, 지나치면 헬리콥터가 아니라 자식을 폭격하는 폭격기가 될 수 있습니다. 더 심한 것은 잔디깎기 부모(lawn mower parents)입니다. 잔디 깎기 부모란 자녀를 성공시키기 위해 자식의 학교 뿐만 아니라 삶에서 자녀들의 장애물을 잔디 깎듯 해결해주는 학부모입니다. 자생력과 독립심이 약해져서 더 약한 자식들을 만들게 됩니다. 자식들은 내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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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단맛

인생의 단맛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아이들의 건강이고, 그 건강을 위한 식습관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음식을 골고루 먹는 습관을 통하여 건강의 기본적인 영양을 섭취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골고루 먹는 음식은 육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두뇌발달에 좋은 영향을 주고, 몸과 정신이 조화되어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맛있는 것, 좋은 것만을 먹인다고, 아이들이 그런 음식만을 먹겠다고 하여 편식을 하게 되면 영양 불균형으로 인해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음식을 골고루 먹는다는 것은 각기 다른 맛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매운 맛, 신 맛, 떨떠름한 맛, 단 맛, 밍밍한 맛, 고소한 맛 등을 느끼면서 맛의 감각을 만들어가고, 그 맛의 감각으로 인해 맛있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짠 맛이 있을 때면 밥을 더 먹게 되고, 매울 때는 물을 더 먹는 학습이 됩니다. 결혼하기 전까지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밥만을 먹어온 사람들은 대체로 음식을 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에 일찍 집을 떠나 하숙도 하고, 자취도 하며, 군대음식도 먹고, 밖에서 많이 먹은 사람들은 음식 가리지 않고 먹는 것을 봅니다. 우리 삶에서 음식만 편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감정의 편식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좋은 감정만을 느끼려고 하고, 좋은 감정을 지키려고 합니다. 인간의 여러 감정들이 있어, 때로는 슬퍼하고, 외롭고, 마음 시리고, 서운하고 등 이런 감정들도 함께 느끼며 살아야 하는데, 온실과 같은 삶의 환경에서 좋은 감정만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삶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감정의 편식은 정신 건강에 해롭고 영혼에 불균형을 일으켜 성숙한 삶을 저해하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도 마음 아파 울기도 하셨고, 분노도 하셨으며, 기쁜 마음으로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셨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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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전하기 게임

말 전하기 게임

지난주에는 유년부와 유스그룹의 여름수련회가 있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것 같은 레드우드나무들이 가득한 동산에서 2박 3일 동안 친구들과 선생님, 전도사님과 함께 귀한 시간을 나누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그리고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여름성경학교와 여름수련회를 생각하면. 얼마나 아이들이 설레고 신나했을까 생각해 보지만, 그 느낌이 아이들에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시에는 놀이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는 여름성경학교와 여름수련회는 정말 기다려지고 신나는 축제였었습니다. 이번 여름수련회에 여자아이들이 없는 것이 큰 흠이지만, 그 친구들이 함께 모여 토론을 하고, 웃고, 떠들고, 노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는지 모르지만, 그 존재 자체가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성경공부와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말 전하기 게임이었습니다. 두 팀에게 동물, 성경인물, 영화등 한 단어를 기록한 카드를 보여주면, 첫 번째 있는 친구가 그것을 보고, 말을 하지 않고 그림을 그려 앞사람에게 보여주고, 그 그림을 본 친구는 자신도 그림을 그려 앞사람에게 보여주고, 그렇게 5명 정도가 지난 다음에 그 단어를 알아맞히는 게임이었습니다. 처음 카드에 있는 단어와 여러 사람들이 지나간 그림은 모든 사람들을 웃게 만들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그림들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게임이었지만, 좋은 교육적인 의도가 담겨있는 의미있는 게임이었습니다.

인간은 감정이 있고, 생각을 하며, 판단을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으며, 자기의 생각과 편견이 들어가서 온전하게 그 말을 전달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말에 대한 불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과 본성과 같은 유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