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적 이해

공감적 이해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 아이티(Haiti) 땅에서 이루어지는 아이티 어린이선교를 알리고, 아이티에서 선교사역을 하는 권선교사님을 연결시켜 주기 위해 진행했던 Bike_a_thon이 은혜 가운데 마쳤습니다. 우리 교인들과 한국과 미국에 있는 분들이 아이티를 사랑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참여해 주셔서 귀한 사역의 열매가 맺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선교기금까지 모아져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 자신 혹은 우리교회를 위한 헌금이 아니라, 아이티의 어린이들을 위한 선교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이야기를 했고, 200여명 이상이 동참해 주셨습니다. 선교헌금에 참여해 주신 후원자에 Maria Santilan 라고 하는 자매가 있습니다. 주성자권사님의 마켓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입니다. 아이티 어린이들을 돕는 Bike_a_thon을 우리 목사님이 한다고 설명했는데, 100불을 헌금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적은 돈이 아니지만, 그 마리아에게는 무척이나 큰 돈이었습니다. 오래전 멕시코에서 와서 현재는 아이만을 데리고 작은 방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자매이기에 적극적으로 만류했는데 참여하겠다고 했고, 헌금을 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어렸을 때 멕시코에서 정말 힘들고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아이티의 어린이들이 겪는 힘듦과 어려움을 이해한다는 것이었고, 그러하기에 자기보다 어려운 아이티 어린이를 위해 헌금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선교프로젝트를 하면서 제가 가장 크게 은혜를 받았던 헌금이었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생각하며 60마일을 달렸습니다.

같은 입장에 처함으로써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이해를 심리학적인 용어로 공감적 이해라고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의 삶속에 인간의 애환을 몸소 겪어보심으로 인간에 대한 공감적 이해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도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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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며칠전 기독교 언론에 목사인 나를 부끄럽게 하는 글이 있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인 이창현의 어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중 76명의 부모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중 80%는 다니던 교회를 떠난 것 같아요. 아마 나머지 20%의 부모들도 상처를 부여잡고 꾸역꾸역 다니고 있을걸요.’ 참사 이후에 유가족들이 출석하던 교회를 떠나나거나, 아예 신앙을 포기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론에서 우리 기독교에서 봉사도 많이 하고, 모금도 많이 했으며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 현실은 유족들이 떠나고, 신앙을 포기한다는 것이 궁금했습니다. 여러 기독교인 유족들은 교회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잘못된 정보들을 함부로 이야기 해서 마음이 상하고, 교회 목사님들이 유가족들의 이야기가 아닌 정부의 이야기만 듣고 공식석상에서 발언하는 경우들이 많아서, 교회에 나가는 것을 꺼려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가족들은 아직도 그들의 자식이 왜 죽었는지 진실을 밝혀 달라고 하는데, 교회는 이제는 그만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라고 하는데, 그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다고 토로한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은 그런 상황 속에서 교회공동체로부터 버림이 받았다는 느낌 속에 실의에 빠져 있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참사 1년이 되면서 이제 세월호 그만 이야기하자고 하고, 현실과 내일이 중요하다고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아니 대부분이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 속에 빠져 헤매는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삭발하고, 목숨을 내놓고 절규하는데 고민스럽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는데,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 시대의 지극히 작은자들입니다. 그 다음날에도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본 사마리아 사람의 변함없는 사랑이 필요한 때입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일본의 양심적 작가로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는 오래전부터 노벨 문학상 수상이 유력할 정도로 알려진 영향력있는 작가입니다. 이 하루키가 며칠전 일본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상대방 국가인 한국이 ‘이제 됐다’고 할 때가지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를 했습니다. 역사 인식 문제는 중요하기에 사과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상대방 국가가 후련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 사과했으니 알았다,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고 할 때까지 사과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의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의 입장과는 다른 양심적인 발언에 관심이 가고, 대부분의 한국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그는 ‘사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일본의 정치인들이 사과하는 것은 부끄럽다고 하는 그들의 전통 때문에 절대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영향력있는 작가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이번 8월이 되면 전후 70주년이 되는데, 일본 총리인 아베신조가 침략이라든지, 식민지라든지, 사죄란 말을 쓰는 것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하루키의 말은 일본을 다시 보게 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자식들이 찬물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아야 했던 가족들의 절규가 너무 마음 아픕니다. 1주년 행사에서 고 최윤민학생의 언니가 한 말이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유족들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을 하는데, 진정 미안해야 할 사람들로부터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절규를 했습니다.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무엇보다도 큰 치료제입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면 인간은 맺혀있는 응어리들이 풀어지기 시작하고, 해결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해결책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과한다는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위선

위선

교회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자,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정확하게는 거룩함을 향하여 나가는 공동체입니다. 종교성을 떠나서 거룩함을 향하여 모인 사람들이 세상에 많을수록 건강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주님을 믿고 예배드리는 자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 모두 심각하게 줄어들고 있다고 통계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미국교회 통계기관인 바나리서치는 며칠전 밀레니엄 세대가 왜 교회에서 멀어지나에 대한 통계와 분석을 내 놓았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교회의 어떤 부분이 그들의 발걸음을 막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분석을 했습니다. 단순히 교회가 지루하다는 의견도 31%가 되었지만, 예배가 구식이어서 싫다는 사람은 8%에 불과했습니다. 예배나 찬양의 스타일을 새롭게 해야만 젊은이들이 교회로 온다는 주장에 대한 새로운 분석이었습니다. 목회자로서 그리고 한 기독교인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크리스챤의 삶과 태도 때문에 교회에 가지 않는다는 답변이 매우 높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위선적이다는 시각이 85%였고, 다른 사람들의 사정에 둔감하다는 지적이 70%를 지적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위선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너무 마음 아픕니다.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위선적이지 않다고, 잘못된 통계라고 말할 수 없기에 더욱 부끄럽고,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과 책임감을 느낍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싫어했던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위선입니다. 가장 크게 질책했던 사람들의 죄였습니다. 거룩한 척하면서 속에서는 세상의 탐욕으로 가득찬 당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주님이 오시면 어떻게 하실까, 두렵습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법

두려움을 이기는 법

어렸을 때 처음으로 영화 사운드오브뮤직(Sound of Music)을 보았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는 흑백영화였습니다. 그 이후 그 영화를 몇 번이나 보았는지 모를 정도로 많이 보았습니다. 노래를 좋아하고 맑은 마음을 가졌던 견습 수녀인 마리아가 명문가의 가정교사로 가서 그 가족들을 음악과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어느날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이던 날, 아이들은 무섭고 겁이 나서 마리아의 방에 모여듭니다. 이때 마리아는 그 아이들에게 무섭고 두려운 때를 이기는 법을 가르쳐 주는데, 그 방법은 좋은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수선화, 푸른 초원, 별들로 가득 찬 하늘 등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어느 책을 읽다가 이 영화의 장면을 설명들으며 처음 보았을 때의 감격을 다시 살려보았습니다. 인간 삶에는 항상 잔잔한 바다와 푸른 초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인생이라는 배를 타면 거센 풍랑도 있고, 폭우도 있으며, 배에 물이 넘칠 때도 있습니다. 이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서움과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 삶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이겨나갈 수 있다는 것이 영화가 주는 도전입니다.

우리 시대는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되돌아보는 마음들이 약해졌습니다. 이 빠른 세상에서 너무나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진정한 여유가 없으면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 믿는자들은 그런 무섭고 두려울 때 좋은 생각, 가장 좋은 생각을 하면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생각은 전능하신, 불가능이 없으신,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믿음이며, 그 믿음은 현실화되어지고, 그 두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까지도 주시는 존귀한 주님입니다.

천천히 살기가 주는 선물

천천히 살기가 주는 선물

요즘 새벽기도회가 끝나고 facebook에 메시지를 정리하여 올린 후에 자전거로 집에 돌아갑니다. 이제 세 주 정도 남은 그 날을 위해 부지런히 몸을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일날을 제외하고 매일 자전거를 타며 내 자신 나름대로 다리 근육훈련을 하고, 장거리를 위해 필요한 기술도 익히고, 무엇보다 체력적 한계를 인내할 수 있는 방법들을 시행착오를 거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실제 코스를 부분적으로 답사를 했습니다. 항상 다니는 길에서 타는 것과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장거리를 간다는 약간의 부담감도 생겼습니다. 급한 일이 아니면 목회실에 있다가 나갈 때도 차를 놓고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다니는 차가 아니라, 천천히 가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니 생각지 못한 작은 선물들이 있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 절대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있습니다. 편하게 가는 차에서 느낄 수 없는 여러 가지를 느끼고 있습니다. 차고 타고 가면 항상 일정할 것 같은 길들이 너무나 다양합니다. 잘 다듬어진 길도 있고, 오래되어 거칠어진 길들을 느낍니다. 금이 간 길들도 있고, 콘크리트가 약해져 모래들이 깔린 길들도 있습니다. 곳곳에 작은 풀들이 있고, 아름다운 꽃들이 있는 것을 보며 지나가게 됩니다. 특히 약간의 오르막에서 속도를 내지 못할 때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85번 고속도로 옆을 지나가며 보았던 숲속의 길들(Stevens Creek trail)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그 길에서 고속도로 위의 차들을 보고, 트래픽이 있어 기어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우리 주변에는 좋은 주변길들이 있는 것을 느낍니다.

항상 그럴 수는 없지만, 천천히 가는 세상 삶은 우리에게 또다른 여유와 새로운 눈을 줄 수 있습니다. 참으로 빠른 문화 속에서 느리게 가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의도적으로 천천히 가는 삶은 빠르게 살기 이전에 가졌던 작은 행복들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기술과 첨단의 제품들이 속도전쟁을 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삶은 천천히 가는 삶으로 거슬러 가야합니다.

패션사진

패션사진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사진을 좋아하시던 신집사님은 때때로 자신이 좋아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작업 중의 하나가 패션(fashion) 사진촬영입니다. 점점 그가 찍은 사진이 깊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는데, 패션사진촬영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척 흥미가 있었습니다. 일반사람들이 제대로 찍지 못하는 특별한 상황에서 촬영한 사진을 인정받은 우리의 신집사님은 상업사진으로서의 패션사진을 부탁받은 것이었습니다. 이틀 동안의 촬영과 그보다 더 긴 후속작업을 해야 하는 작업인데도 피곤함을 모르고 즐기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른 행사 사진은 경험이 있었지만, 패션사진은 신집사님에게 처음이어서 초반에 부담스러웠지만, 바로 적응하면서 편하게 이틀간의 작업을 마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님에 의하면 화려한 옷들을 입은 모델을 수백 번 촬영해야 하는데, 담당자의 시각과 달라서 초반에 약간 힘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초반에는 당연히 모델의 얼굴과 몸매에 맞추어 사진 촬영을 했는데, 이 패션사진은 모델의 얼굴이나 몸매보다도 상업적으로 알리려는 옷이 더 부각되도록 촬영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바로 깨달은 신집사님 뷰파인더(viewfinder)의 변화가 있었고, 그 다음부터는 편안한 작업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작품이 첫 번째로 실리는 패션잡지와 그 패션 웹사이트가 기대가 되고 기다려집니다.

화려한 옷을 발표하는 패션쇼나 상업적으로 알리려는 패션사진은 잘 생기고 멋있는 모델을 알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유명한 연예인들을 모델로 세우지 않는 이유입니다. 아주 잘생긴 얼굴을 가진 사람도 부담스러워한다고 합니다. 옷을 보아야 하는데, 사람을 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드러내야 하는 크리스챤 모델입니다. 우리가 주인공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을 드러내야 하기에, 끊임없이 낮아지고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모델입니다.

Do Not Feed

Do Not Feed

우리 지역 산호세가 좋은 동네라고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닷가가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더 가까이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샌프란시스코 Bay가 근처에 있습니다. 팔로알토의 동쪽동네는 Bay와 붙어 있습니다. 집사람과 여유를 내서 바다까지 가기에 시간이 걸리면 종종 팔로알토의 바닷물과 접하는 공원에 갈 때가 있는데, 갯벌과 확 트인 Bay가 새로운 느낌을 주곤 합니다. 그 공원에는 갯벌이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야생 갈매기와 오리들 그리고 여러 철새들이 떼를 지어 물위에서 노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공원의 호수 주변에 안내문들이 많이 붙어 있는데, 그 야생 새들이나 오리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공원의 새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먹이를 주면 그 새들의 균형잡힌 자연의 먹이를 혼란스럽게 하며, 철새들이 먹이 때문에 이동하지 않고, 사람들이 주는 먹이 때문에 한 곳에 집중하게 하며, 경쟁과 스트레스를 일으키게 하고,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그 경고문에도 불구하고 아랑곳없이 집에서 가져온 빵을 던져주며 노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있었습니다. 야생 새들뿐만 아니라, 야생 동물들도 자신의 능력으로 먹고 살아야 건강하고,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는 먹이는 고생하지 않고 쉽게 먹을 수 있지만, 그 먹이에 익숙해진 새들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고, 끝내는 병에 걸린다는 자연의 섭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야생 조류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경고는 우리 인간에게도 주는 교훈입니다. 자신이 노력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어 살아갈 때 몸과 정신의 건강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돈, 바르지 않은 돈, 과도한 부모들의 돈은 오히려 삶의 건강함을 헤치고 자생력을 잃게 해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거룩한 분노

거룩한 분노

오래전 한국에서 한국교회의 실상을 알리는 영화를 만든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제대로 한국교회의 실상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힘도 크지만, 교회, 교단의 영향력도 적지 않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 얼마전 어느 인터뷰에서 소신을 가지고 만들었는데 그 영화를 올릴 상영관이 별로 없다고 아쉬워했습니다. 원래 만들 때 사업성을 가지고, 돈 벌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실무자들이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기대 이상으로 압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의 작은 영화관에서나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 ‘쿠오바디스(Quo Vadis)’를 돈을 내고 다운로드를 받아 보았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다큐영화 감독인 마이클 무어를 약간 패러디해서 만든 이 영화는 우리 시대 한국교회의 환부를 그대로 보여주고, 왜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불편해야 할지를 도전하였습니다. 이 다큐를 보는 동안 계속해서 무엇인지 모를 분노가 치솟았고, 그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같은 목회자로서 교회와 세상 앞에 심각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미 심각한 병에 걸려 회복하기 어렵다는 영화중의 인터뷰를 들었을 때 마음이 쓰리기도 했습니다. 목회자로서 이 다큐영화를 보면서 그러면 안되는데 교회와 목회에 대한 절망감마저 느꼈습니다. 우리 한국 대형교회의 슬픈 자화상이었습니다. 문제는 많은 교회들이 그런 교회를 기대하며 교회의 성장을 일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성전에 가셨을 때, 성전에서 주님은 분노를 하시고, 성전 뜰에서 팔고 사는 사람들을 내쫓고, 환전상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의 장사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심각한 분노가 말과 행동으로 세상에 드러낸 것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분노였습니다. 이 거룩한 분노는 성전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된 분노였습니다. 이 거룩한 분노 앞에 저는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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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다이어트2

영적 다이어트2

사순절 40일 새벽기도회는 우리에게 많은 영적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다이어트입니다. 이번 사새 기간동안 나름대로 영육간의 건강함을 회복하기 위해 생각한 것이 자전거 타기입니다. 집사람과 함께 새벽기도회에 나왔다가, 집사람은 차를 가지고 먼저 가고, 저는 교회에 남아 facebook 에 메시지를 정리해서 올린 후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차가 있으면 자전거를 피하고 싶은 유혹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자전거를 타고 5분은 기분이 좋은데, 다리 근육과 호흡이 힘들어지면서부터 끝까지 내가 이렇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할 때들이 많습니다. 어쩌든 여러 가지 바쁨과 게으름으로 부족해진 운동 때문에 쉽게 피곤해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나름대로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아침 바람이 약간 춥지만, 페달을 밟으며 들리는 바람소리가 집에까지 저를 이끌어주고 있습니다. 이번 자전거를 타면서 다시 확인한 것은 내 몸의 몸무게를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자전거에 내 몸을 싣고 페달을 밟아야 하는 것인데, 내 몸무게가 다시 늘어났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요즘 자전거 타기 하면서 함께 하는 것은 음식 조절을 통한 몸무게 줄이기입니다. 몸무게가 줄면 훨씬 자전거 타기가 좋아질 것 같습니다. 내 몸의 필요없는 살을 제거하는 이 작업이 쉽지 않지만, 내 건강한 몸을 위해 잘 인내하고 끝까지 하려고 합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몸의 다이어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다이어트를 도전해 봅시다. 사순절 기간동안 하나님 앞에 온전치 못하고 불필요한 것들이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기도와 말씀묵상이라는 영적 다이어트를 통해 영육간에 건강한 우리 몸을 회복시키는 도전을 하십시오. 집도 정리하여 불필요한 것 버리고, 불필요한 만남과 시간들, 불필요한 버릇들을 용기를 내서 버리십시오. 믿음의 강함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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