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30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30
몸으로 드리는 예배
로마서 12:1-2

Good morning!

  1. 로마서 전반부인 1-11장까지를 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전반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설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의 로마서 12장부터 16장까지는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설명합니다.

신앙의 원리와 신앙의 실천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신앙의 원리적인 면이 뿌리라고 한다면,

12장부터 나오는 크리스천의 생활면은

당연한 결과인 열매입니다.

  1.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전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그는 롬1-11장에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설명한대로

우리가 그 은혜를 받지 않았느냐?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옳은 것인지에 대하여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1.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셨지만,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나를 예배하라’라는 말씀입니다.

히브리 민족이 출애굽 할 때,

모세가 바로에게 히브리 백성을 내 보내달라고 할 때

‘광야에 나가서 제사,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해라’ 말했습니다.

출애굽의 목적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길게 설명하고 나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그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말합니다.

  1.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하고 묻는다면

주님은 첫 번째로 ‘하나님을 예배하라’ 대답하실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부모님께 전화하는 것은 어머님의 사랑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 앞에 헌신된 자는 예배를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1. 우리의 예배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새롭게 회복하고 견고하게 합니다.

  1.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몸으로 드리는 제사, 몸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몸의 헬라어 단어는 ‘소마’입니다.

헬라어 소마는 육체라는 말과 구별됩니다.

소마는 인간의 육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마란 그 사람의 인격이고,

그 사람의 모든 삶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몸을 드리라고 하는 것은

우리 모든 삶으로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는 마음으로

모든 생활을 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1. 우리의 믿는 바를 생활로 옮기는 예배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회개기도:

내 삶의 현장에서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한 것을 회개합시다.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9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9
사랑에 대한 집념
로마서 11:25-36

Good morning!

1. 이 로마서는 로마교회에 쓴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신앙적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이슈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것입니다.

로마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이 모였지만,

비유대인들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1. 로마교회에 있는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면서

마음 속에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으로 인해 비유대인들이 구원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 민족이 특별하고 선택받았다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자기 동족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받은 것을 믿었기에

그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크리스챤이 되었음에도

비유대인들이 구원받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1. 로마교회의 유대인들이 비유대인들의 구원에 대하여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비유대인 크리스챤들의 문제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가지게 된

영적교만함이 있었습니다.

  1.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말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구원의 문이 열렸으니

유대인들은 자기에게만 구원의 문이 열려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이방인 크리스챤은 믿음으로 나오지 않은 유대인들을 향한

교만과 경멸을 버려야 한다.

  1. 오늘의 본문은 많은 유대인들이 장차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예언이라기 보다는 그의 간절함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는 유대인만도 아니고,

이방인만도 아니고,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구원의 문이 열렸있다는 것을

신비한 비밀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영적으로 우둔해 있는 사이,

그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해져 많은 열매를 맺었는데,

이것이 끝이 아니라 장차 때가 되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1. 사도 바울은 유대인에 대하여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마운 선물과 부르심은 철회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은 많은 유대인들이 복음의 원수된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주셨던

복과 부르심은 철회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겠다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1. 사도 바울에게는 집념이 있었습니다.

그 집념은 사랑에 대한 집념이었습니다.

자기 민족이 구원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뜨거운 사랑이었습니다.

자기의 민족이기 때문에 구원의 관심이 아니라,

한 영혼,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의 관심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권력, 명예, 물질에 대한 집념이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집념이었습니다.

그 사랑에 대한 집념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사용하시는 이유입니다.

회개기도:

한 영혼 영혼을 불쌍히 여기지 못해

함께 하는 이웃들을 전도하지 못했던 나약한 삶을 회개합시다.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8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8
거룩한 접붙임
로마서 11:11-24

Good morning!

  1. 사도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들에게 부름받은 사도이고,

그는 그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받은 직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직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도 바울처럼 영광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롬 11장은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원래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위해 부름받았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이방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이스라엘은 무슨 의미인가에 대한

대답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1.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

예수님과 이방인에 대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과일나무의 접붙임을 비유합니다.

접붙임은 집에서 개인적으로 하기도 하지만,

과수원에서 많이 하는 일입니다.

일본에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적의 사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 기적의 사과는 배나무에다 사과나무가지를 접붙여서 만든다고 합니다.

배나무에 사과나무를 접붙이면,

배의 단맛이 나는 아주 맛있는 사과가 된다고 합니다.

대구지방에서는 감을 많이 재배하는데

보통 감을 따면 크지 않은 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개암나무를 접붙이면 크고 싱싱한 감을 얻는다고 합니다.

  1.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참 올리브나무 가지들 가운데서 얼마를 잘라 내시고서

그 자리에다 돌 올리브나무인 그대를 접붙여 주셔서

그대가 참 올리브나무의 뿌리에서 올라오는 양분을

함께 받게 되었다.

돌 올리브나무(돌감람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감람나무입니다.

올리브나무로서의 가치가 없습니다.

땅 속 양분을 다 빨아먹지만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다른 나무가 자라는데 방해가 되는 나무입니다.

  1. 그러나 참 올리브나무로부터 접붙임을 받아

새로운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참 올리브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열매없는 돌 올리브나무와 같은 사람들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참 올리브나무에 접붙임을 받아

비로소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과 같은 참 올리브나무에서 얼마를 잘라내서

접붙임을 한 것이기 때문에,

돌 올리브나무에서 열매를 맺는다고

참 올리브나무의 잘라진 가지와 같은 유대인들에게

너무 우쭐대지 말라고 합니다.

  1. 우리 인생은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접붙임을 받거나, 접붙임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접붙임을 하며 살아가느냐입니다.

어디에 접붙임을 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과가 바뀝니다.

세상의 힘에 접붙이게 되면 세상의 열매를 맺게 되고

끝내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접붙임을 받게 되면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고,

끝내는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어떤 접붙임을 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접붙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들의 삶은 우리의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주님을 믿는 우리가 그들에게 접붙여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담은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거룩한 접붙임을 해야 합니다.

그런 삶의 헌신이 있게 될 때

그들 안에서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회개기도:

가족들에게 온전한 믿음의 본이 되지 못했던 우리의 허물과 죄를 회개합시다.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7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7

남은 자의 사명

로마서 11:1-10

Good morning!

  1.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이라고 말씀합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복음에 믿음으로 순종하지 아니한 이스라엘 민족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전적으로 버리신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을 전적으로 버리셨다면,

유대인인 사도 바울도 버림을 받아야 하는데,

유대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1. 하나님은 구약시대에도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주님의 역사를 위해 소수(minority)를 남겨주셨다고 말합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아합과 이방신을 섬기는 이세벨을 향해

하나님의 진노를 전합니다.

언제까지 하나님과 바알신에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을 것인가?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갈멜산에서 제단을 태우는 싸움을 하게 됩니다.

당연히 이 싸움에서 이긴 엘리야는 바알, 아세라 선지자들을

전멸을 시킵니다.

이에 화가 난 여왕 이세벨은 엘리야를 잡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1. 여기에서 도망간 엘리야는 지쳐서 쓰러져,

내 생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라고 체념합니다.

오직 저만 혼자 남았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칠천명을 남겼는데,

이들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엘리야는 세상에 자신과 같이 하나님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지쳐있었는데,

칠천명이나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 칠천명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남긴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를 하여도,

유대인들의 구원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구원을 위해

남은 자들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1. 남은 자 신앙, 남은 자 신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는 전체가 아니라,

소수의 남은 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창조적 소수 creative minority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숫자의 창조적 남은 자들을 택해서,

그들을 통해서 일하시고,

그들을 통해 구원하십니다.

  1.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런 사람입니다.

가나안땅을 정탐하러 갔을 때

함께 갔던 10명의 지도자들은 비관적인, 불신앙적인 보고를 합니다.

이스라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저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가서 싸워 승리합시다, 의 보고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수가 아니라,

창조적 소수인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1. 이제 우리가 남은 자의 신앙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죄악으로 물든 이 세상 속에서,

세상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할 남은 자가 되어

주님과 세상을 섬겨야 합니다.

시대에 무릎 꿇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지켜 나가야 할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회개기도:

우리의 말과 행실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우리의 죄를 회개합시다.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6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6

복음전파자의 소중함

로마서 10:14-21

Good morning!

  1. 1885년 봄 인천에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도착했습니다.

서른도 안된 그들은 미지의 세계인

조선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함으로 복음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들의 시작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한국교회가 된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오면서 한국사회는 빛의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새로운 깨달음으로 인해 한국사회는 놀라운 발전을 했고.

복음을 받아들인 한국이,

복음을 전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1. 복음의 역사를 시작했던 초대교회의 빌립에게

하나님의 뜻이 임했습니다.

‘일어나서 남쪽으로 나아가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거라.

그 길은 광야 길이다.‘

빌립은 순종하여 그곳에 갔고,

거기에서 이디오피아 여왕 간디게의 고관인,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내시를 만나게 됩니다.

  1. 그는 마차에서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가까이 가서 묻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것을 이해하십니까?

그때 그 내시가 대답합니다.

나를 지도하여 주는 사람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빌립은 그의 청함을 받고 입을 열어

성경말씀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1.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보내심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 사도 바울의 질문은

말씀 전파하는 자가,

말씀을 전하는 자가 있어야 복음이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그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10:17)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 전파자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1.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파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그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1. 복음을 전하는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면 한 인생을 살릴 수 있고,

한 가정을 살릴 수 있으며,

한 민족을 살릴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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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5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5

주님을 시인하는 믿음

로마서 10:5-13

Good morning!

  • 우리들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내 소원은 조국의 통일이다 라고,

어떤 사람은 내 가족이 화합하는 것이라고,

어떤 사람은 자기 사업이 성공하는 것이라고,

어떤 사람은 건강한 몸을 갖는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 소원은 그의 동족이 구원받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동족인 그의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구원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1. 사도 바울은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에 대한 말씀을 전합니다.

믿음이 어떻게 하면 생기는가?

그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말미암는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데서 믿음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굳건한 믿음을 갖기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외에 믿음이 온전히 생기는 것은 없습니다.

불신자들이나 초신자들이 교회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교인들의 모범된 삶으로 시작할 수는 있지만,

믿음은 말씀을 들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말씀에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1. 예수는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을 때

구원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아주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쉽게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다 라고 고백하는데,

사람들은 마음이 없이 입으로 말할 때가 많습니다.

  1.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마음 속에 믿음이 꽉 차 있는 것을 뜻합니다.

삶이 전적으로 주님 앞에 헌신된 상태를 말합니다.

진정한 신앙 고백없이,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구원과 관계없습니다.

  1. 주님을 내 주님으로 고백하기 위한 첫 단계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의 주인됨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탐욕의 마음, 이기주의 마음, 내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다 포기할 때만 주님을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고백할 때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틀림없는 것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확실합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지만,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면 살고,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1. 예수님을 진정 내 주로 섬기고

시인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 십자가의 길이 있을 때만

영광의 길이 있습니다.

회개기도:

내 삶의 주인이 나 자신이었던 삶을 회개합시다.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4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4

인간의 의와 교만함

로마서 9:30-10:4

Good morning!

  •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이 있을 때 우리의 죄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율법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 가운데 이런 인간의 연약함과 죄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려면 하나님의 뜻대로 제대로 지켜야지

대충 지킨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질문했습니다.

우리 한번 율법을 철저히 지켜보자 하는 뜻으로

열심있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힘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여 율법을 지키자고 했습니다.

그들이 바리새파 사람들입니다.

  1. 바리새라는 뜻은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되어 살자고 하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소수였지만, 유대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600개 정도의 세부적인 조항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더 꼼꼼히 지키자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것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습니까?

그렇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율법을 잘 지켰지만, 상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는 없었습니다.

  1. 바리새인들은 율법적으로 잘 섰는데,

넘어지는 것을 조심하지 않았습니다.

선 줄로 생각하거든,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그들은 왜 넘어지는 것을 조심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그들의 교만함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율법을 최고로 잘 지킨다는 것을 자랑하고

드러내기를 원했습니다.

  1. 그들은 골방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서서 기도를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하나님의 눈보다 사람의 눈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남이 눈치채지 못하게 겸손히 기도해야 하는데

그들은 오히려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다른 때는 기름을 안 바른다고 해도,

금식할 때는 머리에 기름 바르고 깨끗하고 단정하게 해야 하는데,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금식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세수도 일부러 안하고,

머리는 헝클어뜨리고, 피곤한 척 하면서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경건의 능력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5.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자랑하고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의 목적을 뒤바꾼 사람들입니다.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하면 할수록

‘나는 죄인입니다’를 깨닫지 못하고 의인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교만함을 만들게 됩니다.

자신이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믿음에

하나님이 개입할 여지가 없게 됩니다.

우리가 죄인일 때에 예수님이 구주이신데,

내가 의인이라고 생각하면 예수님이 함께 하지 못하게 됩니다.

  1.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열정이 있었는데

그 열성은 올바른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의 의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아니었습니다.

  1. 이런 유대인들의 생각과 믿음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내 마음의 간절한 소원과 내 동족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은

‘그들이 구원을 얻는 일입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1. 이 바리새인의 문제가 바리새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바리새파적인 문제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의를 드러내고, 자랑하려고 하는 마음, 교만한 마음이

우리안에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믿음의 새 결단을 해야 합니다.

회개기도: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회개합시다.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3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3

하나님의 주권

로마서 9:1-18

Good morning!

  1. 두 사람이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사람들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이고,

한 사람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사람들 앞에 서서 거룩하게 기도했고,

세리는 멀찍이 서서 지은 죄가 많은지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내고 가슴을 쳤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바리새인의 경건하게 기도드리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1. 우리 인간은 세상 일들을 생각할 때

대부분 인과관계 속에서 생각도 하고 평가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큰 일을 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런 큰 일을 했을까 나름대로 분석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에 실패를 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실패를 했을까 분석을 하며 여러 원인들을 생각합니다.

  1. 세상의 일들 속에서 인과관계를 생각하듯이

믿음에 있어서도 그런 사고를 가지고 분석을 하려고 합니다.

왜 구원을 받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대답을 합니다.

신실하게 믿음생활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구원의 원인을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율법주의입니다.

  1. 여기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구원을 얻는 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라고 합니다. (16절)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불공평하다고 불만을 갖는 사람에게

토기장이 이야기를 합니다.

  1. 토기장이가 흙 한 덩이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귀한 데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 데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합니다.

토기장이의 전적인 마음이고 권한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심판과 구원에 있어

전적인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을 합니다.

  1. 우리는 구원에 대하여 인간적 판단을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에 대하여

근거는 성경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신앙기준으로 판단과 정죄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하나님 대신에 하려고 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는 말씀에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 심판을 받았다는

이원론적인 생각 속에서 사람들을 판단합니다.

  1. 롬1:19에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다고 말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전에도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조선땅에 복음이 전해진 것이 300년 전인데,

그 이전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모르기 때문에

모두 구원받지 못하고 심판받았다고 정죄하는 것은 바르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입니다.

  1.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선택받은 민족이기 때문에

자신들만 구원받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당연히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 또한 인간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방인이든지, 유대인이든지 구원의 문제는

그들이 만든 율법이나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입니다.

  1.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던 두 사람,

사람들의 눈과 평가에는 거룩하게 보이는 바리새인이

의롭다 인정을 받을 것 같은데,

진정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것은

멀찍이 떨어져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불쌍히 여겨달라는 세리였습니다.

거룩하게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못한,

그리고 위선적이며,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는

바리새인은 의롭다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인간의 생각과 주님의 심판은 다릅니다.

  1. 우리들의 생각과 판단으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면 안됩니다.

우리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면 됩니다.

그리고 정죄와 심판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회개기도: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우리의 죄를 회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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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2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2

내 겨레를 위하여

로마서 9:1-18

Good morning!

  1. 열심과 열정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그런 사람과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위한 열심과 열정의 사람입니다.

바울 서신서를 읽으면

사도 바울이 얼마나 열심과 열정이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고 충성을 했습니다.

  1. 그런 사도 바울에게 슬픔이 있고, 고통이 있었습니다.

몸이 아프면 고통이고, 마음이 아프면 슬픔인데,

그는 마음이 아파 몸까지 아픈 고통을 느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동족인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내 육신으로 내 동족인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자신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유대인들은 내 소관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인 자기 동족을 위해서라면

그리스도에게서 저주를 받아 죽어도 좋다는 생명을 건 열정이었습니다.

  1. 겨레를 위한 뜨거운 열정과 열심은 모세에게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모세는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주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주십시오.

정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구하는 기도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용서하셨습니다.

  1.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이런 간절함과 열심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만나기 전,

밤이 새도록 그물질을 하는 수고가 있었지만,

아무것도 잡지를 못하셨습니다.

한 마리도 못잡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고 그물질을 한 것입니다.

주님은 그의 끈기를 보았습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날이 새도록 그물질을 한

베드로의 열심에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저 열심을 다듬을 수 있다면….

  1.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나기전,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일에 열심히 있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멀리 다마스커스에까지 가서라도 예수를 믿는 사람을

잡아 데려오겠다는 열심히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의 잘못된 열심을 보았습니다.

그의 열심의 방향이 바르게 간다면 큰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정말 주님을 만나 그의 삶의 방향이 변화되었을 때

그의 열정과 열심은 대단했습니다.

수없이 감옥에 가고, 40에서 하나를 감한 태형을 당하고,

굶주림, 헐벗음, 위협, 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감당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 사도 바울은

주님의 사명, 복음을 전하는 일에 나의 생명을 조금도

바치는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고 했습니다. (행20:24)

그는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빌2:17)

교인들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하는 제사를 드리는 것도

기쁘다는 그의 열심이었습니다

  1. 이런 그의 열심과 충성심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들어있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받은 사람,

그 사랑이 흘러 넘쳤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그런 열정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 무엇도 끊어낼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열심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1.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내 겨레 내 동족을 위해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합니까?

내가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의 마음을 가지고

내 겨레를 위해 기도했습니까?

아니 내 가정을 위하여, 내 가까운 이웃들을 위하여

우리교회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 민족을 위하여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습니까?

  1. 자기 동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1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1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로마서 8:31-39

Good morning!

  1.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에 전하기를 원했던 복음에 대한 말씀은

8장에서 마무리 됩니다.

8장은 복음을 마무리하는 찬양이요,

마지막 악장을 장식하는 대합창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찬양이 바울의 독창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합창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의 구체적 삶의 현실에서 고백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포함한 사도들이 걸어간 길에서 깨달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걸어갈 때 평안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이 그런 믿음의 길을 걸었습니다.

사도들의 삶에

환난, 곤고,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협, 칼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도들이 그 모든 것을 이겨나갈 수 있게 해 준 힘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도 끊어낼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1. 주님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의 환난, 곤고,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협, 칼 등이 있지만,

우리 시대에도 여러 많은 나라에서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그런 힘듦이 있고,

우리의 삶의 환경에서는 다른 모양의 세상적인 힘들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진실로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면

여러 모양의 환난과 곤고함이 있습니다.

총과 칼이 아니라, 세상의 힘이 흔들어 놓는 박해가 있고,

주님을 믿기 때문에 여러 모양의 굶주림과 헐벗음이 있습니다.

먹지 못한 것만 굶주림이고,

입지 못한 것만 헐벗음입니까?

  1. 우리 삶의 변화는 환경의 변화와 사람의 변화입니다.

환경은 사람이 변화시키는 것이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삶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세상이 기술과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만들 수는 있지만,

진정한 사람의 변화는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람이 변화되지 않고는 환경을 온전하게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특히 믿는 자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힘과 근거가 되는 사랑이 있지 않고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1. 가지고 있는 재산을 가지고 떠나, 세상에서 잃어버렸던 탕자,

그는 아버지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자신의 삶의 상황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 그 아들은

집에 먹을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여전히 자기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되돌아간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집에 돌아오지 않고, 다른 세상에 가서 무너지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변함없는 아버지의 사랑이 그로 하여금

아버지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1. 세상 사람들의 감정기복이 심합니다.

사람들은 삶의 환경 속에서 조건이 바뀌면 감정이 흔들립니다.

감정의 기본이 사랑인데, 그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상황과 조건에서는 사랑이 작동하는데,

상황과 조건이 약해지면 사람의 사랑은 흔들리게 됩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그렇고,

그래도 변함이 적은 부모의 사랑도 흔들리게 됩니다.

  1. 감정 기복이 심한 인간, 끊임없이 죄를 짓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을 하고 광야생활을 할 때,

그들이 잘못하고 범죄하였다고 해서,

그들에게 허락해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를 끊었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출애굽때부터 그들을 이끌고 보호하였던

낮의 구름기둥과 밤의 구름기둥을 정지시킨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1. 그런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믿는 자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죽음, 삶, 천사, 권세자들, 현재일, 장래일, 능력, 높음과 깊은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