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0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20

현재 고난과 영광

로마서 8:18-30

Good morning!

  1.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빛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에

세상이 외면하기도 하고, 때로는 조롱하기도 하며,

힘든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선명한 자부심을 갖지 않고는

세상에서 담대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1. 하나님의 자녀가 된 믿음의 사람은 두가지를 거쳐가야 합니다.

하나는 고난이고, 또 하나는 영광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상속자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고난은 영광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영광을 위한 고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가 받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1.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이 길은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길입니다.

세상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말씀하시는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세상에서 아무런 고민이나 힘듦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온전한 믿는 자들의 삶이 아닙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삶은 고민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는 삶은 고민할 것이 없습니다.

  1. 주님의 말씀에 따라, 복음에 순종하는 삶을 걸어갈 때는

고난이 있습니다.

당연한 고난이 뒤따르게 됩니다.

고난이라고 하는 것이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 놓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당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기에

육신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거나, 무너지거나

그것으로 인해 마음 아파하는 것 모두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기 위해 돈을 써야 하기에

내가 누릴 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 또한 작은 고난입니다.

주님을 믿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 앞에서

희생을 하고, 마음에 상처를 받고 참는 것도 일종의 고난입니다.

세상의 거대한 악에 대하여 마음 아파하고,

무엇인가 작은 일을 하면서 힘들어 하는 것도 고난입니다.

  1. 그러나 이런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 믿음 때문에 받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다.

고난이 있지만,

그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주어지게 된다.

고난이라는 것, 그것 힘들지만,

참고 견디며 기다려라.

그러면 영광의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두 주간 정도 힘든 시간을 거치게 됩니다.

약간 고통스러운 시간입니다.

배고프기도 하고, 무기력해지며 현기증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힘든 시간을 거치고,

두 세달 정도 음식 조절을 하면 새로운 몸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건강하고 신선한 몸이라고 하는 영광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1. 우리 인간은 연약합니다.

약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 그런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 연약함을 도와주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 가운데 기도하지 못할 때도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신다고 합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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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19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19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로마서 8:1-17

Good morning!

  1. 사람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느냐가

그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사회적 지위를 얻고 싶은 이유는

대체로 큰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많은, 여유있는 돈을 벌어 인생을 즐기고 싶어하기 때문이니다.

건강을 지나치게 지키려는 이유도

무슨 특별한 의미에서가 아니라,

건강함으로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삶의 큰 목적없이 지금을 누리며 살아가려고 하는 것은

육신에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이며,

육체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1. 한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고,

그 생각을 어떻게 지키며 살아가느냐는 중요합니다.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흙으로 창조한 첫 번째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어 영적인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인간을 이렇게 영적인 존재로 만드신 다음에,

에덴동산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은 아덴동산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왜? 그것은 뱀의 유혹을 받아

자신의 생각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생각을 지키지 못해서입니다.

생각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죄를 짓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낙심해서 절망하는 것도 죄입니다.

무기력하게 소망없이 살아가는 것도 죄입니다.

사람을 의심하며 관계 단절하는 것도 죄입니다.

시기해서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죄입니다.

돈이 많아 탐욕으로 비인간화되어지는 것도 죄입니다.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도 죄입니다.

자아가 너무 강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 못하는 것도 죄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 믿음의 생각을 지키지 못함입니다.

  1.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을 위해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성령에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생명과 평화에 이르게 됩니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하나님을 외면하고, 미워하며 적대시합니다.

절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1.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들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으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후5:17)

  1.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탕자가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큰 죄를 지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용서해 달라고 말도 못하고, 품꾼으로 써 달라고 합니다.

이런 때 아버지의 말은 ‘고맙다’입니다. 그런 마음입니다.

방탕한 아들은 아버지 안에 있다가, 아버지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돌아온 아들은 다시 아버지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가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죄인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내 마음 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다는 말입니다.

  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우리들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되면,

우리의 죽을 몸을 살리실 것이라고 성경은 약속과 축복을 합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님을 살리신 것과 같이,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1. 육신을 따라 사는 삶을 통하여 죽음에 이르는 삶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사는 삶을 통하여 생명과 평화의 삶을 살기 바랍니다.

회개기도:

육신을 위한 삶을 살아왔던 우리의 죄를 회개합시다.

중보기도:

믿음의 공동체요 사랑의 공동체인

새하늘우리교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18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18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

로마서 7:17-25

Good morning!

  1.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주시겠습니까?’

그는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위험에도 있었고,

혹심한 태형을 받기도 하고,

배고픔과 굶주림으로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외적인 고통과 어려움 당할 때는,

오히려 이런 처절한 고백을 하지 않았습니다.

핍박이 심할수록 사도로서의 사명감을

더욱 공고히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내적인 영적싸움에서

그의 갈등과 어려움을 고백합니다.

영적거인인 사도 바울이

자신 삶의 마지막에, 신앙의 완숙함이 정점에 다다랐을 때

그런 고백을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줍니다.

  1. 믿음이 좋은 사람은 절대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가?

하나님의 큰 능력을 체험했던 사람은 결코 낙심하지 않는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제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도 흔들리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종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 치열한 싸움을 합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며 살아갈 것인가, 하면서

삶과 믿음의 선택을 외칩니다.

입에서 불을 품어내는 듯한 기세였습니다.

그런데 싸움에서 승리를 한 후

이세벨의 분노로 인해 엘리야는 멀리 도망을 갑니다.

그는 무서워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합니다.

엘리야의 연약함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강한 군사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어느 순간 낙심해서 괴로워하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일치되지 않는 믿음과 삶을 고백합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는다.

선을 원하는데, 그의 행동은 악을 행하는 쪽으로 간다는 말입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다.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운다.

내 자신은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살고 싶은데,

내 안에 있는 다른 내가 있어 끊임없이 싸운다는 말입니다.

  1. 사도 바울 정도면 갈등, 고민, 문제 없이

날마다 확신에 차서 입을 열면 할렐루야 할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고민, 그 속의 갈등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도라도 어려움과 갈등 겪으며,

영적갈등을 한다는 것을

하루하루의 삶 가운데 끊임없이 넘어지는 우리에게 고백합니다.

  1. 왜 이런 갈등과 고민, 낙심, 이율배반적인 삶이 있는가?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죄 때문입니다.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려는 나와

악한 길로 이끌려는 죄가 함께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그 죄는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 죄는 이따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는 죄입니다.

큰 죄, 작은 죄 관계없습니다.

바윗돌도 모래알도 물에 던지면 다 가라앉듯이,

큰 죄, 작은 죄 모두 가라앉게 되어 있습니다.

  1. 체로키 인디언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추장이 아이에게 말합니다.

우리 안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있단다.

한 마리는 선이라고 하는 늑대이고,

한 마리는 악이라고 하는 늑대란다.

이 두 마리의 늑대가 내 안에서 끊임없이 싸우고 있단다.

아이가 질문합니다.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추장은 말합니다. 네가 먹이는 쪽이지.

  1. 우리는 삶의 연속에서 선택하는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선택이어야 합니다.

영원한 죽음에 이르는 죄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의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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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17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17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맺는 나무

로마서 7:1-6

Good morning!

  1.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실 때 많은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사람들이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용하신 방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서신서에는 비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비유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교회 상황에 대한 권면과 신앙적 교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복음의 내용을 설명할 때 비유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율법, 죄, 구원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유대문화의 결혼제도를 비유로 사용합니다.

  1. 사도 바울 당시 유대사회의 결혼제도는 우리의 문화와는 다릅니다.

유교문화권에 있는 우리나라는 남편이 죽었다고 해서

곧바로 딴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선뜻 이해하지 못합니다.

남편이든 부인이든,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사람이

재혼을 하는 것은 사람들의 화젯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남자가 새장가 들면 죽은 여자가 불쌍하다고 하고,

여자가 재혼하면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뒤에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유대사회에서 한 쪽이 세상을 떠나면

재혼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유대 사회에서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고아와 과부와 이방인입니다.

그런 이유로 남편이 떠난 여자들에게 사회적 보호와 배려차원에서

재혼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1.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결혼제도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들은 율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다고 합니다. (롬6:14)

남편과 함께 살 때는 남편의 영향과 지배를 받지만,

남편이 죽으면 그 영향에서 자유로워지고,

새 남편에게 재혼하면 그 남편의 지배를 받듯이,

율법 아래에 있을 때에는 율법의 지배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이 죽었기에

죽은자 가운데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에게 속한다고 말합니다.

  1. 율법을 지켜야만 의로운 삶이라는 것이 유대교의 전통인데,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죄가 깊어갑니다.

그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이라는 거대한 벽이 무너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함을 얻은 것입니다.

더 이상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됩니다.

  1. 율법이 죽고, 죽음에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과거의 삶은 율법이 지배하는 삶이었고,

죄에 지배를 받는 삶이었기에

그 죄가 우리 지체에 있을 때에는 작용을 해서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이 지배하는 삶, 은혜 아래의 삶은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1. 문자에 얽매인 낡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율법적인 삶이요, 정죄하는 삶이며,

자신이 만들어낸 기준에 의하여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자유의 정신, 사랑의 정신, 은혜의 정신으로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1. 사랑하는 여러분이 그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맺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맺는 거룩한 나무들이 되십시오.

내 자신 안에서, 내 가정 안에서 그리고 교회와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되십시오.

세상에 희망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16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16

의의 종으로 살아가라

로마서 6:15-23

Good morning!

  1. 로마서를 포함하여 많은 바울서신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된 나 바울은’

사도 바울은 자신을 설명할 때,

자신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합니다.

그는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그는 당당한 유대인이었습니다.

세상의 성공이 열려있는 사람이었고, 명예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영접한 후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세상의 모든 기득권을

쓰레기와 같이 버렸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변화시키고, 자기의 인생을 변화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1. 종의 운명은 주인에게 달려있습니다.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종의 삶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의리가 있고 예의가 바르다고 하여도

조폭두목의 부하면 그는 조폭입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워도 정직하고 진실한 지도자의 부하는

의미있는 삶입니다.

  1. 이스라엘 민족은 400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합니다.

그들은 이집트의 바로왕의 종이었습니다.

노예로 살았던 그들은 매일매일 혹독한 노동을 해야 하는 종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고된 일 때문에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준비하고 계셨던 미디안 광야의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의 역사를 만드셨습니다.

그 출애굽의 역사는 종으로 살고 있었던 그들에게

주인을 변화시키는 역사였습니다.

그들은 출애굽을 한 다음에

바로의 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되게 됩니다.

하나님을 그들의 주님으로 섬기는 삶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애굽을 떠나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들이 불순종했다면 그들은 새역사를 만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새역사에 동참하게 됩니다.

  1. 하나님은 애굽에서 가지고 있었던 종의 근성을 제거하기 위해

광야 40년을 인도하십니다.

불가능의 땅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종의 근성을 뽑아내셨습니다.

약속의 하나님 나라에 그런 정신으로 들어가면서

백전백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1. 종에게 중요한 덕목은 순종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종은 종이 아닙니다.

불순종의 종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종이 될 때에 주인의 인정이 있게 되고,

종을 신뢰함으로 주인은 새 일을 종에게 맡기게 됩니다.

  1. 요셉은 형제들의 음모로 이집트에 잡혀와서

바로왕의 경호대장 보디발의 종으로 살아갑니다.

막강한 힘을 가진 보디발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육적으로는 세상권력의 종이었지만,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었기 때문에 신실하게 일하며 기다렸습니다.

보디발의 부인이 유혹했을 때에도

보디발의 부인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끝내는 이집트에서 제일 큰 종이 되어서

기근이 있을 때 이집트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민족들을 위하여 큰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1. 사도 바울은 뜨거운 믿음으로

우리의 지체를 의의 종으로 바쳐서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라고 합니다.

의의 종이 된다는 것은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삶입니다.

내 삶의 주인은 세상이 아니고, 권력이 아니고, 돈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은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면 거룩함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1. 우리가 하나님의 종, 의의 종이 되면

감히 죄가 우리를 도전하지 못합니다.

죄에서 해방을 얻게 되고, 의의 종이 되어서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사랑, 기쁨, 평화, 오래참음, 친절, 선함, 신실, 온유 그리고 절제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은 거룩한 삶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1.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죄의 종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의의 종으로 살아갈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종, 의의 종을 선택하는 삶을 통하여

우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

영생을 누리는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종이 아니면, 가만히 있으면 죄의 종이 됩니다.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15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15

내가 죽어 의의 도구로

로마서 6:12-14

Good morning!

  1. 우리는 지금까지 로마서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부활한 사람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죄에 대해서 죽고,

동시에 부활하여 하나님에 대해서는 산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새 사람, 새로운 존재,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과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죄로부터 해방되고, 떠난 사람이라고 합니다.

바로 거룩한 삶,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1. 죄와 자유함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어떤 아이가 새총을 만들어 놀았습니다.

새총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쏘고 싶은데, 찾은 것이 마당의 거위였습니다.

아버지가 귀하게 여기는 거위였지만,

새총을 사용해 보고 싶어서 쏘았는데, 한방에 맞고 거위는 쓰러지고 죽었습니다.

새총으로 거위를 잡은 것이 죄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죄가 아니고 실수입니다.

이 아이는 겁이 나서 망설이다가 땅에다 묻어버렸습니다.

땅에다 묻은 것은 죄입니까?

그것은 죄입니다. 죄의 시작입니다. 잘못한 것을 감추려 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돌아와 보이지 않는 거위를 찾다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은 두근두근 거리며 모른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그것은 죄입니다.

이 아들은 거짓말을 하면서 아버지와의 평화가 깨졌습니다.

예전처럼 아버지에게 다가가지를 못했습니다.

집에서 일하는 고약한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아주머니가 말합니다. 얘야, 우물에 가서 물을 떠 오너라.

아들은, 왜 아주머니 일을 내가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네가 거위를 잡아 죽이고 땅에 묻었지, 나는 그것을 보았단단.

그 다음부터 꼼짝없이 물을 떠왔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날에는 이 아주머니는 그 아들에게 허드렛일을 시켰습니다.

일을 시켜야 하는 종의 종이 된 것입니다.

이 아이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용서해 주세요. 제가 실수로 거위를 잡았고, 땅에 묻었습니다.

아버지는 말합니다. 얘야,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단다.

네가 중요하냐? 거위가 중요하냐?

아무리 내가 거위를 좋아한다고 해도, 너와 비교할 수 있겠느냐?

그 이후부터 아버지와의 화평이 회복되었습니다.

그 아들은 고약한 아주머니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 아주머니가 시키는 일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1. 죄는 사람을 지배합니다.

죄에 지배당하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약한 모든 인간에게 해당합니다.

다윗왕이 옥상에서 멀리 남의 여자를 보게 되었을 때

음란한 욕망이 생겼습니다.

이 죄의 욕망에 굴복되자, 죄는 다윗의 왕노릇을 하게 됩니다.

죄의 지배를 받게 된 것입니다.

죄의 지배를 받는 다윗왕은

남의 여자를 데려와 간음의 죄를 범하게 되고,

이것을 감추기 위해 거짓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그 남편을 전쟁터에서 죽게 만드는 무서운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렇게 훌륭한 다윗왕도 죄가 왕노릇하자 꼼짝없이 당한 것입니다.

  1. 죄가 우리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려면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면 됩니다.

가장 좋은 최선의 방법입니다.

어둠이라고 하는 것은 빛이 없는 상태입니다.

빛이 약해지면 어둠이 시작되고,

빛이 완전히 없으면 완전한 어둠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성령과 더불어 살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죄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내 안에 죄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1. 우리 몸의 지체를 죄에 맡기면

우리는 불의의 연장, 죄의 무기가 됩니다.

그러면 생명을 죽이는 도구로 쓰임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몸을 하나님께 맡기면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의의 연장, 의의 무기가 됩니다.

우리들의 몸, 시간, 관심 그리고 물질을 하나님께 맡기면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쓰임받는

의의 도구가 되어 존귀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이 불의의 연장, 불의의 무기가 되면

우리 말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죽이고, 상처주고, 절망케 하는 것입니다.

  1. 지금까지 내 지체를 불의에 맡겨 불의의 연장으로 쓰임받았다면

회개합시다.

회개하고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려서 의의 도구의

거룩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14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14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로마서 6:1-11

Good morning!

오늘 새벽기도회가 끝나고 개인기도를 하면서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살아야 하는데,

내가 죽고 주님의 몸된 교회가 살아야 하는데,

내가 죽고 새하늘우리교회가 살아야 하는데,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교회를 위해 내가 어떻게 죽어야 하나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오늘 그 말씀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죽었다고 하는데,

이제 그렇게 죽어야 내가 살고,

주님의 몸된 우리교회가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교회의 성례전에 세례(침례)가 있습니다.

용어의 차이가 있지만, 의미의 차이도 약간 있습니다.

여러 형식이 있지만,

세례는 주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세례자에게 물을 뿌림으로

거룩한 존재, 구별된 존재로 인정하는 거룩한 의식입니다.

침례는 주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면서

옛사람은 죽는다는 의미로 물에 몸 전체를 잠기게 하여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세례, 침례 모두 귀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 인정하고 존중했으면 합니다.

  1. 오늘의 본문은 우리가 세례를 받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라고 하면서

세례를 받을 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합니다.

롬6장은 전체가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가 어떤 존재인지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입니다.

예수님과 동일한 길을 걸어가고, 동일한 능력이 임하고

동일한 권세를 행하는 존재로서의 성도입니다.

본문에는 ‘합하여, 함께, 연합한 자’라는 단어가 9번이나 반복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위해서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죽어야 합니다.

그와 함께 묻혀야 합니다.

죽을 때만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됩니다.

  1.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마16:24)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을 죽인다는 말입니다.

내가 죽어야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다고 합니다.

내가 죽지 않고서는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없고,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라는 말은 과거를 버린다는 말이고,

과거를 버리지 않으면 절대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내 과거를 버린다는 것은 내가 죽는 것입니다.

  1.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말합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라는 것은 나를 죽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이 된다고 말합니다.

내가 죽어야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야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여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in Jesus Christ)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하는 말은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거의 200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말입니다.

  1.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갈5:20)

내가 죽어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사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우리 가정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죽어야 세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1. 내가 해야 할 일은 날마다 죽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깨어지고, 낮아져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나고

주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1. 자기 정체성이 중요합니다.

네가 누구냐? 라는 질문에

나는 예수님과 함께 산 새사람입니다.

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네가 어디에 있으냐? 라는 질문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지배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죽는 것입니다.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13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13

한사람의 영향력

로마서 5:2-21

Good morning!

  1. 교회가 화려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유럽의 중세시대인데, 이때 교회는 대단했습니다.

교회나 사제들이 돈과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권력도 가지고 있었고, 세상에 대한 영향력도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없고, 은과 금이 있던 시대입니다.

그런 혼탁한 시대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시대를 이겨낸 힘이 수도원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않을 때

수도원에서는 세상과 달리 하나님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선(line)이라고 하는 것은 점(spot)의 연속입니다.

우리의 나지막한 주님의 말씀과 기도는

하나님 나라의 선을 이어갈 것입니다.

  1. 내년에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 운동으로 떠들썩할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는 한 명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그 한사람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을 어떻게 뽑느냐에 따라

향후 5년, 10년 그리고 20년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1. 오늘 본문에는 한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사람이란 단어가 9번 반복됩니다.

또 이말 못지않게 자주 반복되는 표현은 많은 사람, 모든 사람입니다

본문에 따르면 한 사람의 영향력이 많은 사람에게 미친다는 말입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본문은 인간 세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두 인물을 소개합니다.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두 인물을 비교하면 하나님의 뜻을 듣게 됩니다.

  1. 아담은 누구인가? 아담은 이 세상에 죄와 죽음을 심은 장본인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아담으로 인하여

이 땅에 들어온 그 죄들을 다 청산하신 분입니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들이 죄를 범하였고,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함으로 전부 죽음에 이르렀고,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모두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대표성이 있습니다.

  1.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이 외국팀과 게임을 하여 이기면

우리가 이겼다고 합니다.

11명의 선수들이 뛰었지만, 그들이 우리의 대표성이 있기에

우리가 이겼다고 합니다.

1945년 일본천황이 미국 함정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합니다.

천황 한 사람이 조인했지만,

일본의 대표성이 있기에 일본이 항복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대표하는 아담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게 죽음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사람의 죽음으로 그리고 그것을 믿음으로

우리 모든 사람들이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1. 한 사람의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받았고,

한 사람의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아담은 세상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에 죄를 지었지만,

우리 예수님은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

순종은 굴종이 아닙니다. 자존심을 상하는 것도 아닙니다.

순종이란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늘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여 이 세상에 오셨고,

이 세상에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에 순종하셨습니다.

주님의 권리 포기와 순종이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1. 한 사람으로 모든 사람이 죽을 수 있고,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한 사람 때문에 가정이 죽을 수 있고,

한 사람으로 인하여 가정이 죽게됩니다.

한 사람 때문에 일터가 살고,

한 사람으로 인하여 일터가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살면서 함께 하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었는지,

함께 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사람이었는지 되돌아 봅시다.

만약 죽이는 사람이었다면 진심으로 회개합시다.

남은 인생을 한 사람의 바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십시오.

회개기도:

나로 인하여 내가 속한 가정과 일터 그리고 교회가 죽어갔다면

그 죄를 회개합시다.

중보기도:

우리교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12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12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로마서 5:1-11

Good morning!

1.로마서 말씀 전체가 귀한 말씀이지만,

그 가운데 기쁜 소식과 같은 말씀이 롬5:1-11입니다.

복음을 설명하는 말씀으로 그 의미가 깊고,

그 맛이 꿀송이처럼 달기 때문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오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

  1. 롬 5:1-2 말씀에는 세가지의 기막힌 은혜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은혜이고,

둘째는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에 들어가는 은혜이며,

셋째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되는, 그 영광을 즐거워하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은혜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힘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인데,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는 이 은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1.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인정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믿는 믿음입니까?

그 믿음을 요한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요3:16)

여기에서 ‘저를’ 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사랑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진실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 탕자 되었던 아들이

어떻게 죄를 사함 받았습니까?

그는 아버지께 돌아와, ‘잘못했습니다.’ 고백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고백한 아들의 죄가 순간에 깨끗이 용서받았습니다.

400년 동안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했던 히브리 백성들이

그들을 무슨 큰 일을 행하였기 때문에,

아니면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으로 부르짖을 때에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는 말씀이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1. 우리에게도 이 믿음은 동일하고 중요합니다.

우리는 본래 죄의 아래에 있었고, 모두 죄인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인의 삶을, 구원받은 삶을 살아갑니다.

이 의인의 삶의 열매는 하나님 더불어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평화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1. 평화를 누리는 것은 무엇을 소유해서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것을, 좋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

편안은 한데 평안하지는 않습니다.

평화를 누리는 것은 무엇인가를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평화라고 하는 것은 온전한 관계회복일 때입니다.

가정에서도, 이웃들 관계에 그렇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입니다.

내가 진정 하나님을 믿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온전한 관계가 되면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1.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져서 평안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져 평안하지 못하니까

사람들과의 관계가 평안하지 못합니다.

문제 해결은 간단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려 하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먼저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평안이 주어질 것입니다.

  1.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그 믿음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평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그 믿음이 있으면, 평화 자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평화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고

환난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회개기도:

온전한 평화의 삶을 살지 못해, 때로는 평화를 무너뜨렸던 우리의 죄를 회개합시다.

중보기도:

우리교회 목장을 섬기는 목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주수일 김세훈 정아담 이상승 정낙호 최흥진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11

영적갱신을 위한 40일 새벽기도회 11

세상에 희망이 사라질 때에도

로마서 4:13-25

Good morning!

  1. 우리들은 한국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전통음악보다는 서양음악에 익숙하고 편안해 합니다.

우리의 전통리듬은 익숙하지 않아 새로 배워야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학교 교육이 서양음악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학교와 삶의 환경은 합리주의입니다.

과학적 증명이 되어야 하고, 눈에 보여야 하는 교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배우고 자라고 살기 때문에

세상은 믿음이라는 사고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1. 아브라함은 희망이 사라진 때에도

하나님을 바라며 믿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믿었는가 하면 하나님의 자손에 대한 약속을 믿었습니다.

자녀가 없었던 아브라함의 상황은

합리적으로 보면 자손에 대한 약속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100세가 된 아브라함, 태가 죽은 사라의 상황 속에서

자녀를 얻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믿음이 굳세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1.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입니다.

사라의 태가 죽었었는데 하나님은 죽은 태를 살려

아들 이삭을 얻게 하셨기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다, 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 죽은 자를 살리시는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

그 말씀에 순종해서 모리아 산에 아들을 데리고 제사드리러 갔던 것입니다.

모리아산의 제단에서 아들 이삭을 잡으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서,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이 기적적으로 얻은 아들을 잡을 마음을 가졌는가?

그것은 아브라함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1. 아브라함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11:1)

보지 못하는 것들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런 믿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땅을 나아갈 때도

보이지 않는 땅을 향하여 확신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몸을 바치라고 했을 때도

보이지 않았지만, 다시 살리실 하나님을 믿고 나아갔습니다.

  1. 노아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홍수를 믿고

평지도 아닌 산 위에 방주를 만듭니다.

세상 사람들이 비웃고 미쳤다고 할지라도

노아는 보이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만들었고, 구원의 역사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출애굽을 하고 함께 나온 히브리백성들과 함께 홍해로 향해 나아갑니다.

모세가 이끌고 간 홍해는 바다로 가로막힌 공간이었습니다.

전략적으로는 너무나 잘못 판단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홍해로 간 것입니다.

홍해 앞에 갔기 때문에, 홍해가 갈라지는 영광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가 갔던 광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척박한 땅입니다.

거기에 들어가면 안되는 지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갑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아브라함의 믿음에 의한 행동,

포기하지 않는 믿음은 어디에서 왔는가?

대답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확신 때문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세상적인 희망이 사라진 때에도

주님을 바라면서 믿었습니다.

  1. 우리시대는 세상의 영향력이 커서

때로는 기독교의 거룩한 영향력에 대하여

희망이 약해지고, 사라지는 것 같은 마음 아픔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희망이 사라진 때에도 주님을 바라면서 믿었던 믿음을

배우고 고민하고 결단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회개기도:

거룩한 삶,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고 세상과 다를바 없이 살았던 삶을 회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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